“John Deere z235 구입 |John Deere d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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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1.1%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0%로 2위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는 달랐다. 홍 후보가 과반에 가까운 47.1%를 얻었다. 문 후보는 고작 21.8%였다. 심지어 사드 배치 반대 시위가 격렬했던 경북 성주군에서조차 사드에 찬성한 홍 후보가 무려 56.2%를 얻었다. “TK는 답이 없다. ” “세뇌되었다. ”는 탄식이 쏟아졌다. 왜 대구‧경북 주민들은 지난 9년간 지역 경제에 공헌한 건 별로 없는 보수정당 후보에게 또다시 표를 던졌을까?
  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지었다. 모두들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동안 쉬는 세상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 어떤 다른 변형을 가하지 않으려는 자연의 풍경과 한번도 연기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끌어내려는 마음으로부터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정 사이의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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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의 소통에 있어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낡은 매체의 특성은 곧,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학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휴대 전화를 소지하지 않은 인물들은 다양한 이유로 흩어지고 다양한 이유로 모인다. 눈앞의 상황과 사물에 온전히 집중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을 음미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라진 낭만은 차치하더라도,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극적 구성의 틀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두 작가는 첨단의 도구를 쉽게 옹호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문학적인 것만큼 또 영화적이다. 빛의 움직임, 특히 일광과 석양을 인물의 심상에 맞추어 잡아내는 솜씨나, 배우들의 감탄할 만한 즉흥 연기 그리고 프랑스 도시들과 해안 지방의 풍광을 풍요롭게 활용하는 것 등은 분명 문학적인 경지를 넘어선다. 또한 그의 영화는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볍고, 속물적인 듯하면서도 질박해서 주인공들의 지적 허영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
  카르네는 1840년대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 극장가 블르바르 뒤탕플을 무대로 인간극을 연출했다. 극장과 나이트 클럽이 줄지어 서 있던 환락가이자 범죄의 거리인 이곳에서 팬터마임 연기자 바티스트 뒤브로아주는 스테이지에서 나체춤을 추는 가랑스와의 애정을 축으로 장장 3시간35분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랑스를 둘러싼 뒤브로, 극작가 피에르 라스네르, 연극배우 프레데리크 르메트르 등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은 가상적인 것이었다.
영화는 실제로 귀니가 장기간 수감됐던 감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모범수로 일주일의 휴가를 받은 다섯명의 인물에 초점을 두어 터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고대하던 고향길이었지만 귀휴증을 잃어버려 다시 구치소에, 그것도 그가 있던 곳보다 더욱 자유가 억제된 공간에 갇히는 인물, 짧은 휴가 동안 친척들의 집요한 감시 아래서만 약혼녀와 데이트할 수밖에 없는 청년, 처남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처와 자식들을 처가에서 내주지 않아 결국은 함께 도망치나 처가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남자, 쿠르트족이란 이유로 밤이면 총성이 그치지 않는 고향에서 형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물, 그리고 자신이 없는 동안 간통한 죄로 사슬에 묶인 채 살고 있는 아내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단죄해야 하는 인물 등이 그들이다.
  1943년 마리아와 헤르만 브라운의 결혼식은 공습으로 엉망이 된다. 전쟁에 끌려간 헤르만이 러시아에서 실종되자 마리아는 흑인 미군 빌에게 매춘해 삶을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 남편 헤르만이 돌아오고 마리아는 빌을 살해한다. 헤르만이 마리아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빌에게서 익힌 능숙한 영어 덕분에 마리아는 사업가 오스발트의 경제적, 성적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마리아는 남편에겐 사랑을, 그리고 오스발트에겐 섹스만을 제공한다고 믿고 자신이 그 관계들을 조절하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의 꿈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부르주아적 가정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오스발트가 남긴 유언은 그를 뒤흔들어놓는다. 마리아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오스발트와 헤르만의 계약에 의해 설계된 것이었다. 사실 문, 창문 그리고 계단에 의해 계속 프레이밍되는 마리아의 이미지와 급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그의 인식 이전에 이미 그가 누군가에 의해 프레임화해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70년대 일본 다큐멘터리영화의 부흥과 성장은 60년대 이후 일본 좌파운동의 성장과 그 맥을 같이한다. 오가와 신스케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1969년 통신대학생들의  대학 자주화투쟁에 관한 기록영화 <청년의 바다>,그리고 학생운동권 지도부의 1년간의 투쟁과 패배를 기록한 <압살의 숲>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1967년 오가와  감독에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진다. 도쿄 근처의 조용한 농촌인 나리타에 새 공항을 세운다는 정부의 방침을 그 지역 농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현대 터키 속에 남아있는 봉건과 전통과 관습 그리고 군사정권이며 그  억압에서 자유로운 개인이란 영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자유란 것은 이 터키라는 곳에 부재하는 단어로 보인다. 영화에는 어떤 영웅도 없으며 운명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민중들만 있다. 여자들 또한 전통과 관습 그리고 남성의 명분을 위해 존재하는 듯 그저 수동적이다. 영화는 그저 그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그들의 조건은 정치적 목표의 좌절이나 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과의 관계나 소수인종의 상황에서 인물들의 역정이 기인한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하찮은 일이라는 듯 반응이 없다. 허탈해진 안토니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어느 젊은이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본다. 쫓아가지만 또 허사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 젊은이 집을 찾는다. 안토니오는 빈민가의 그 집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자기처럼 가난한 데다 젊은이는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쓰러진다. 경찰이 오나 증거도 없다. 그러던 중 아들과 다투고 아들이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강가에서 어린애가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아들은 계단 위에 나타난다.
  게다가 가장 역동적인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육상경기들을 미국의 흑인선수들이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영화는 애당초 선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어졌고, 이러한 장면을 삭제하라는 나치관료들의 요구를 뤼펜쉬탈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정치적 구호의 거세도 프로파간다로부터의 탈출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육체가 시종일관 찬양되고, 준군사적이며 독특한 양식으로 패턴화된 시각적 모티브들이 반복해서 등장함으로써 파시스트의 미학과 시각적 상상력의 정수가 드러난다. 그 점에서, 히틀러에게는 매력을 느꼈지만 나치의 이데올로기에는 반대했다는 뤼펜쉬탈의 항변은 별다른 힘을 지니지 못하며, 파시즘의 매혹적인 시대정신을 그는 무의식적으로 담아내버린 셈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Obama)는 당선 후에도 여전히 ‘그의 형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그의 당선에는 자발적으로 발 벗고 나서 흑인 사회를 결집시킨 거물급 흑인 뮤지션의 공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투표가 아니면 죽음을!(Vote or Die)’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오바마를 공개 지지하는 노래를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오바마를 당선시킴으로서 꿈을 이루었다.
  고다르는 8편의 단편영화 수업을 거쳐 그의 <카이에 뒤 시네마> 동료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나리오 <네 멋대로  해라>로 데뷔했다. 그는 스스로 이 영화를 ‘오토 플레밍거의 <슬픔이여 안녕>에 대한 속편’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으며, 또 한편으로 험프리 보가트에게 바치는 연애편지(!)라고 불렀다. 고다르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자신의 영화광적인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영화에 바치는 존경심과 함께 정반대로 모든 영화에 대한 부정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는 마치 B급 갱스터 영화의 멜로드라마처럼  보인다. 주인공 미셸(장 폴 벨몽도)은 별다른 이유없이 차를 훔치고, 여자들을 울리고, 경찰을 총으로 쏘고, 미국에서 온 애인 패트리샤(진 세버그)를 설득해 도망치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패트리샤는 경찰에 고발하고, 미셸은 거리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다.
하지만 파트리시오 구즈만(연출), 페데리코 엘론(기획), 호르헤 뮬러(촬영), 베르나르도 멘조(사운드), 호세 피노(조명)는 16㎜ 에클레어 카메라와 나그라 녹음기 한 대, 그리고 코닥 흑백필름만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경이적인  체험과의 만남이었으며, 그들은 작업일지에 ‘이 영화는 새로운 역사의 첫번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써넣었다. 대부분의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었으며, 수많은 생산계층의 민중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어두운 조명 때문에 많은 장면들은 자연광 아래서 ‘생생하게’ 찍혀야만 했다.
  그들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돌아오겠다고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고 두렵기는 해도 길을  떠난 것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삶의 여러 양태는 결코 닿지 못할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고, 그들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이 그저 빛과 어두움 뿐인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그들 자신의 경험과 함께 감독이 그들의 여정에 개입시킨 다양하고도 모순된 삽화들을 통해서 일어난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군상, 결혼이란 축제 전경에서 죽어 넘어지는 말, 공연장조차도 얻지 못하고 헤매는 유랑극단(<유랑극단>의 재등장), 사소한 순간적인 욕정으로 소녀를 범하는 트럭 운전사, 헬리콥터가 물 속에서 끌어내 달고 가는 거대한 손 등은 삶의 무력함과 절망만을 그들에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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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스 만이 1936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브레히트의 혁명적 연극에서  출발해 나치즘의 선전원으로 전락하는 한 극예술가의 반생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회프겐의 모델은 독일 현대연극사의 한쪽을 차지하는 구스타프 그륀트겐즈(1899∼1963)다. 함부르크 지젤 극단에서 연기경력을  쌓기 시작해 나치 아래서 베를린 국립극장장을 지낸 그륀트겐즈는 1932년 상연된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 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프리츠 랑의 에서 지하세계의 음흉한 두목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사실 토마스 만의 아들인 클라우스 만이 소설 <메피스토>를 썼던 것은 구스타프 그륀트겐즈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적 감정이 개입돼 있었다. 그의 여동생 에리카 만이 바로 20년대 그륀트겐즈의 동료이자 애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쇼트들은 대체로 느릿하고 길며 종종 극도의 광각으로 촬영된다. 그것은 대지의 광대함과 자연의 영원성을 드러내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단세포적인 혁명론자들에게 공격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영화사가 <대지>를 도브첸코의 오랜 화가의 꿈이 스크린에서 성취된 걸작으로 기록하게 한 요소였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그러나 <우카마우>는 영화로서가 아니라 제3세계의 민중영화 운동의 상징적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쿠데타로 등장한 군부정권에 의해 상영금지되고 호르헤 산히네스는 <우카마우>의 대중적 명성을 살려 그의 영화그룹을 ‘우카마우 집단’으로 이름지었던 것이다. 우카마우는 아이마라어로 ‘올바른 길’을 뜻한다.  <우카마우>에서 그것은 아내를 잃은 인디오가 메스티조 상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우카마우 집단’에 와서 그것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중투쟁의 길을 뜻하게 된다. 우카마우 집단은 그 ‘올바른 길’을 “민중영화는 민중 속에서 탄생하고 민중적 미학을 담으며 민중에게 보여져 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민중노선’으로 걷고자 했다. <콘돌의 피>는 ‘우카마우 집단’의 첫 영화다.
  <올란도>는 4백년을 산 그/녀의 이야기로 양성성의 문제를 알레고리적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제목 ‘Orlando’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데 ‘혹은, Or’ 또는 ‘그리고, and’를 섞어 붙인 주인공의 이름은 남성 혹은 여성, 또는 남성 그리고 여성인 주인공의 이름으로서는 매우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복장 전환과 성적 전도를 통한 양성적 실험을 하면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가장무도회에 초대받은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무도회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기존의 여성성/남성성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

One Reply to ““John Deere z235 구입 |John Deere d270””

  1.   영화사상 이렇게 독특한 시공간을 보여준 감독은 없었다. 이러한 그의 영화세계는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 의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뉴질랜드의 빈센트 워드, 영국의 마이클 래드퍼드, 그리고 러시아의 콘스탄틴 로푸샨스키,  알렉산드로 카이다노프스키, 알렉산드로 소쿠로프에서 한국의 배용균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이후의 세계영화를 이끄는 주요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타르코프스키는 분명 80년대 이후 새로운 영화의 스승으로 기록될 것이다. < 필자: 김지석/부산예술대 교수·영화학>
      영화가 뤼미에르식으로 발전, 진화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쿠스투리차의 영화는 분명 이단이다. 또 현실의 자명성과 역사의 텔로스를 믿는 이들에게 쿠스투리차의 뫼비우스 띠는 필경 재앙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이단과 재앙이 일으키는 혼돈 속에서 생성되는 질서를, 즉 종말과 유토피아가 맞닿아있음을 에필로그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 언더그라운드>를 세기말에 대한 그리고 이제 1세기를 막 넘긴 영화라는 매체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어도 과잉독해는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필름 다르'(예술 영화)와 고몽사의 작품들, 이탈리아의 스펙터클 등이 각 에피소드들마다 적절하게 인용된 이 영화는 유럽 영화를 미국식으로 길들이려는 그리피스의 야심에 찬 스펙터클이며, 특히 둥근 기둥에 코끼리들이 늘어선 거대한 바빌론 세트 장면은 이후 “할리우드 바빌론(탐욕과 악의 상징)”이라는 미국 영화산업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 바빌론에서 그리피스는 바벨탑의 붕괴 이후 잃어버린 보편적 언어의 복권을 열망했고, 그것이 바로 미국 영화의 언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세계 영화 시장은, 그의 그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
    존 포드의 서부극이 흔히 그렇듯이 이 작품의 낭만적 성격은 미국인의 가슴에 언제나 전설처럼 남아있는 ‘고독한 서부의 사나이’인 이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과거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그가 그토록 애타게 데비를 찾아다니는 동기를 제공한 형수 마타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데비를 귀환시킨 뒤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의 이던은 서부극의 낭만적 인물유형의 전형인 셈이다. 이러한 고독한 인물유형은 서부의 개척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전설처럼 점차 사라져가며 존 포드는 그 특유의 롱 쇼트를 통해 이러한 전설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광야를 배경으로 끝없이 데비와 추장 스카를 찾아 헤매는 이던 일행의 롱 쇼트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구도지만 사라져가는 서부의 낭만적 시대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을 담아내는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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