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Deere x500 +John Deere 트랙터 딜러”

  오손 웰즈는 단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기자를 따라가며 네 사람을 만나 플래시 백 구조로 케인의 주변에 있던 다섯 사람의 눈으로 케인을 본다. 잘 짜여진 19세기 소설의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그 속에서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은 서로 상이한 진술에 의해 반복과 차이를 경험한다. 그것은 영화에서 이중화법을 통하여 영화적 시간으로 이야기를 다시 배열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모순을 드러내, 질서정연하다고 믿었던 고전적 세계를 비판적으로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 호텔은 또한 묵시록적 현실의 상징적 축도이기도 하다. 급사는 지하에서 올라오고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는 늙은 종업원은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방의 책상에는 엄청난 먼지가 쌓여 있고 벽지는 내부의 부패로 인한 열로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사람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데 복도에는 빈 구두가 놓여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져가는 이 호텔의 아리송한 면면은 곧 지옥의 변방에 다가서 있는 현실 이미지다. 그것의 논리적 귀결은 불로써 정죄당하는 묵시록적 호텔로 되돌아온 찰리는 호텔 곳곳에 불을 지르고 나타나 도망치는 형사를 쫓아 달려오며 소리지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굴삭기’란 단어를 ‘굴착기’로 순화하라고 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굴착(掘鑿)’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1956년 한자 제한에 따라[27] 굴삭(掘削)으로 대체되었고,# 한국에는 이것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주장이 옳다고 볼 수 있는 게, 일본어에서는 ‘굴착’을 써야 할 듯한 대륙붕 굴착 역시(대륙붕을 포크레인으로 풀 것은 아니니까) 대륙붕 굴삭이라고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鑿’이란 한자 자체는 현대 일본어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 착암기도 삭암기(削岩機)로 부르니까.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힘든 고갯길을 넘어서는 것에 비유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장면을 보자. 주인공 부자가 탄 차가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다 힘에 부쳐 다시 내려온다. 이때 조금 전에 태워달라는 요청을 무시당했던, 짐을 진 한 청년이 차를 밀어 내려가는 것을 도와준다. 청년은 다시 짐을 지고 고개길을 올라가고 내려갔던 차가 잠시후 다시 올라와 마침내 고개를 넘어 그 청년을 태우고 떠난다. 비록 꼬마들을 찾지는 못했지만 삶에 대한 희망은 여전하다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그리고 삶은…>이라는 제목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라스트씬이다.
  데 시카는 1955년 3월4일 프랑스신문 <르몽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려고 몇달째 제작자를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미국 제작자가 나섰다. 단 주인공으로 케리 그랜트를 써달라는 조건이었다. 나는 거절했다.” 여기에 바로 이 작품의 성공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그는 미남인 케리 그랜트 대신 어느 공장의 무명의 노동자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를 대담하게 주인공으로 기용했다. 아들 브루노에는 거리를 쏘다니던 부랑아 엔조 스타이올라, 그리고  아내에는 기자 리아델라 카렐을 기용하는 등 모두 비직업적인 무명배우를 썼다.
대동공업과 국제종합기계가 제각기 존디어 트랙터를 국내에 공급하는 가운데 모델별로 특장점이 달라 농업인들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제조사가 존디어로 똑같으나 모델에 따라 제조원산지 및 자동화 성능, 가격 등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동공업이 주력하는 존디어트랙터는 6020 시리즈로 규격은 80마력에서 135마력까지 6가지(6120, 6220, 6320, 6520, 6620, 6820) 모델이며, 존디어 독일 만하임 공장에서 생산됐다. 반면에 국제종합기계가 주력하는 제품은 미국에서 생산된 5325(66마력), 5425(77마력), 5525(88마력) 등 3개 모델과 함께 연내에 브라질에서 생산된 6415(105마력), 6615(120마력), 7515(138마력) 등을 추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존디어사의 트랙터라도 모델에 따라 원산지가 다르고 각기 다른 성능을 가지고 있다. 6020시리즈로 대변되는 독일산은 자동화 고급화 사양이 많고 15 시리즈의 브라질산은 수동방식을 많이 채택하기 때문에 변속방식에서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다. 엔진도 독일산은 커먼레일방식을 적용해 유럽의 배기가스규제 ‘티어 2’를 통과한 반면 브라질산은 이보다 2단계 낮은 ‘티어 0’이다. 그러나 가격은 독일산이 브라질산보다 매우 비싸다. 135마력 규격의 경우 독일산 6820은 8870만원인 반면 138마력 브라질산 7515는 6300만원으로 무려 2500여만원이나 저렴하다. 따라서 자동화돼 편의성이 높은 제품을 선택할 때는 독일산을, 자동화 기능은 좀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한 것을 선택하려면 브라질산이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대동공업 관계자는 “독일산과 브라질산은 자동화 기능, 캐빈 사양, 엔진, 공급가격 등에 차이가 있다”며 “농업인들은 기종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사추세츠 주에는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300명이 넘으며, 해마다 190,000ℓ에 이르는 메이플 시럽을 생산합니다. 3월이나 4월 초 매사추세츠 주의 “슈가 쉑(sugar shack, 수액을 끓여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건물)”에 방문해 메이플 수액을 채취하고 끓여 시럽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세요. 슈가 쉑에서는 아침 식사로 팬케이크를 제공하고 메이플 시럽 사탕과 병에 담긴 시럽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달콤한 기념품을 챙겨보세요. 
  하지만 그들은 허우샤오시엔의 붕어빵이 아니었다. 허우샤오시엔이야말로 대만인들의 삶과 역사 때문에 생겨난 붕어빵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풀지못한 과거의 숙제, 평생을 끌고 가야할 희망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힘이 있다. 서구의 고전적 영화형식과 대등하게 보편적 영화문법의 하나로 자리잡은 <비정성시>의 영화언어로 허우샤오시엔과는 다른 개인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들은 <비정성시>를 넘어선 것이다.
앨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 저마다 엇갈리는 현지의 평은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존 레전드와 루츠의 기본 ‘클래스’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호평을 늘어놓은 매체도 적지 않다. 반면 한편에서 존 레전드가 ‘거장들의 소울’을 제대로 소화해낼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거나, 앨범 콘셉트와 메시지가 진부하고 과잉이라거나, 고민과 성의가 부족한 속빈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비판 역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장군>은 “어수룩한 낙오자가 사내다운 용기를 증명해보여 사랑하는 여자를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몇번을 보아도 신선하다. 정치성도, 사회에 대한 풍자도 없다. 단지 키턴의 독창적인 희극적 효과가 있을 뿐이다. 백치 같음과 철학적인 것이 엿보이는 키턴 특유의 무표정과 절제된 신체적 움직임, 주인공이 싸워야 할 상대가 한 소대가 타고 있는 기차 혹은 한 부대가 주둔해 있는 적지라는 것, 기관차라는 거대한 기계덩어리로부터 무한한 희극적 효과들을 끌어내는 규모 등은 당대  여느 코미디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영화는 시간과 장소를 명시하고 시작한다. 1941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고의 베오그라드. 무기밀매를 하던 블래키와 마르코는 지하실에 무기생산고를 만든다. 이로부터 3년후, 마르코는 블래키를 독일군으로부터 구출해 지하실로 숨게 한다. 하지만 유고가 해방된 후에도 마르코는  지하실 사람들을 속여 계속 무기를 만들게 하는 한편 블래키가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아를 빼앗고, 티토의 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린다. 블래키의 아들 요반의 결혼식날 언더그라운드는 사고로 파괴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믿고있는 블래키는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고 있는 촬영현장에 도착해 진짜 총을 발사한다. 1992년 다시 전쟁에 휩싸인 베오그라드. 마르코와 나탈리아는 블래키의 지하군에 의해 살해된다.
관객들의 시린 가슴을 녹여줄 감성 멜로 <디어 존>을 탄생시킨 힘은 바로 감성 연출의 대가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다. 라세 할스트롬은 영화 <디어 존>을 연출하면서 관객들에게 진솔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바로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 제작진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한 씬 한 씬 서로를 존중하면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배우에 대해 완벽히 이해 하며, 감독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갔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완성도 높게 만들어내기 위해 라세 할스트롬 감독과 채닝 테이텀,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수 없이 의견을 교환했으며 그 결과 강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은 배우들에게 매 장면을 촬영할 때 마다 다양한 즉흥연기를 시도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두 배우와 감독은 그들의 한계점이 어디인지 경험했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며 자신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침내 프랑스 국기를 내려버리고 자신들의 혁명기를 올린다. 그리고 지붕 위를 걸어가며 하늘을 향해 노래한다.  <품행 제로>는 종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조롱 때문에 “사회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그 당시엔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과 풍자 코미디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이 실험성 높은 영화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인다.
정치적 입장을 택하는 마음의 레스토랑에 다시 빗대어보자. 영역-특이적 모델에 의하면, 이 레스토랑에는 미리 정해진 코스메뉴가 따로 없다. 고객의 입맛에 따라 샐러드, 수프, 메인요리, 디저트, 차 등등 종류별로 마음대로 선택하여 코스를 만들 수 있다. 어떤 고객이 선택한 음식들의 집합이 A 코스에서 제공되는 음식과 많이 겹치거나 아예 똑같을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우연일 뿐이다. 고객이 처음부터 A코스 메뉴를 주문하지는 않았다.
  <천국보다 낯선>은 미국영화지만 사실 미국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기 떠돌지만 정신적으로 건조한 삶의 조건, 긴 페이드 아웃의 화면전환이 주는 형식의 단절감 등은 무엇보다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시했던 미국영화의 전통과는 별로 상관없다.  자무쉬는 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등의 유럽 영화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주 야스지로 등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현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모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7인의 사무라이>는 농민, 사무라이, 산적, 이 세 집단간의 미묘한 갈등과 싸움을 다루고 있지만 구로사와가 최종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집단은 결국 사무라이들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무라이들을 통해 자신의 휴머니즘을 실현하고자 한다. 스토리 구성과 인물설정의 기본 모티브는 중국의 고전 <수호지>에서 따왔지만, 한 영웅이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마을에 들어가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한 뒤 떠난다는 신화적인 구조 설정은 미국 서부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무라이에 대한 짙은 향수’라는 일본적인 의식을 주제로 삼되 그것을 풀어나가는 미학적인 틀은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46년)에서 차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다루는 기법이나 일부 에피소드가 눈에 띄게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크게 휠타입(일반 바퀴를 사용)과 크롤러 타입(무한궤도를 사용)으로 나뉘고, 무한궤도 타입은 일반 철제 궤도를 사용하는것부터 고무를 씌운 고무트랙식, 위에 나온 스파이더 타입같이 경사지 작업이나 목재 채취, 광산작업등에 특화된 특수기종 같이 여러가지 형태의 장비가 있다. 이외에도 트럭의 후방에 굴삭기를 장착한 것도 있다. 다만 이쪽은 작업과 이동을 병행하는 것이 어려우며, 무엇보다 굴삭 작업의 반경이 180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가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해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끝나며, 혁명은 폭동으로 변질하고, 결국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무시무시한 인플레가 독일 전역을 휩쓸던 1927년 1월10일 베를린에서 개봉되었다.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 제작자 월터 윈저였다.
  또한 로샤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담은 인물유형들의 갈등과 투쟁을 결코 편안하게 보게 두지 않는다. 수평적이고도 깊이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카메라, 원사와 길게 찍기로 보여준 지형과 인물들의 움직임, 브라질 고유의 색채를 재현한 의상과 세팅, 양식화한 연극적 연기, 안무된 칼싸움, 영상에 동반하는 음유시적인 노래 등의 양식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고 비판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길>은 하층계급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가난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내부와 운명과 시간 간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길>의 예술성의 바닥에는 리얼리즘과 환상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추구가 한꺼번에 고여 있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뜨내기로 추락한 미녀와 야수의 패러디가 있으며 예수의 이미지로서의 ‘바보’ 줄광대와 성녀 이미지로서의 ‘백치’ 소녀라는 종교적 알레고리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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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그는 트럭의 꼬리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들고 뛰다가 시위대열에 앞장서기도 하며, 고아 소녀를 만나 가정을 꿈꾸고 직업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방랑자는 현대의 작업에 적응하기 힘들다. 결국은 소녀와 지평선을 향해 떠난다.  대중사회에서 소멸되어가는 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물질문명이 가져오는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모던 타임스>는 공산주의적 경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물의를 일으켰다.
어떤 작업을 수행하든 Cat 굴삭기와 함께 하면 수익성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비를 사용하면 최고의 성능, 뛰어난 다기능성 그리고 업계 최고의 연료 효율이 보장됩니다. 편리한 작동과 내구성 그리고 귀사를 생산성 향상의 본보기이자 경쟁업체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는 최신 안전 기능 및 기술도 마음에 들 것입니다. 또한 Cat 굴삭기는 정비도 쉽습니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다면 Cat 굴삭기 제품군을 알아보십시오. 귀사의 고유한 비즈니스 요구에 맞는 이보다 더 우수하고 종합적인 장비 라인업은 어디서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굴삭기는 그 특성상 급경사나 지반 침하가 있는 곳에서 자주 작업하기에 위에서 흘러내린 토사에 의해 매몰되거나 무게 중심을 잃고 밑으로 구르거나 떨어져 전복되는 사고가 잦은데,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이 안전불감증[25] 때문이다. 그나마 급경사에 특화된 스파이더 타입조차 기사분들이 가격이나 작업용량, 유지보수 등의 문제로 쓰질 않는다. 아무튼 중장비 운전이나 카센터 관계자들은 툭하면 굴삭기가 구르고, 빠지고, 매몰됐다거나 하는 소식을 의외로 많이 접할 수 있다.
  <길>은 펠리니의 명성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든 초기 대표작의 하나다. 이 영화는 명백히 네오레알리슴의 틀 안에 있던 자신의 영화를  시적이고 주관적인 세계로 열어놓는 전환점이며 동시에 이탈리아 영화가 네오레알리슴의 외적 현실에서 인간관계의 내적 현실로 초점을 이동하는 과도기의 징후적 작품이기도 하다. 펠리니는 네오레알리슴의 대표자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45년), <전화의 저편>(46년)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이력을 시작하여 1952년 <백인 우두머리>로 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음 작품 <이비텔로니>와 더불어 네오레알리슴 계열로 분류되지만 <길>에서 돌이켜보자면 주관성 또는 내적 접근의 특성은 이미 여기에 드러나 있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강력한 현실성이 ‘보이는’ 촬영 스타일에서만 출발한 것은 아니다. 알제리 정부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모두 알제리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고, 촬영현장에 동원된 알제리 민중은 전투의 기억을 되살리며 울부짖었다. 엑스트라의 표정이 살아 있다는 말이 이 영화만큼 적절한 경우도 흔치 않으며, 엔니오 모리코네의 격정적인 음악에 실려 있는 배우들의 진지함과 농축된 대사는 영화의 차갑고 건조한 기조를 보상해준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 지 내년으로 1백년이 된다. 이 ‘과학혁명’으로부터 1백년이 지난 오늘날 영화는 각광받는 첨단산업,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자리를 굳혔다. 영화 1백년을 맞아 세계영화사를 다시 쓰는 ‘영화 100년, 영화 100편’을 수요일마다  연재한다. 영화평론가 안병섭·주진숙·김지석·정성일·이효인씨 5명이 작품 선정을 맡고, 이들을 비롯해 김홍준·김소영·이정하·강한섭·이용배씨 등 20여명이 필진으로 참여한다.
  가벼운 부감촬영은 브레송의 거의 모든 쇼트에 순환적으로 나타난다. <무셰트>에서도 그렇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이러한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 속에 항상 존재하는 억압상태를 느끼게 한다. 그가 수업을 마친 후 교실에서 나와 항상 적대감을 느껴온 급우들에게 진흙덩이를 던지기 위해 낮은 웅덩이 비탈에 숨는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아르젠느가 그에게 죄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를 앙각으로 우러러 보게 된다. 그는 이 순간에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고백을 듣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힘(모성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앙각촬영에 이어 카메라의 위치가 다시 높아지면 그의 사회문화적 핸디캡(연약한 소녀)도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3부가 거의 편집되던 시점인 46년 8월부터 당국은 <폭군 이반> 2부를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진보적 군대였던 이반의 오프리치니키(친위대)를 미국의 KKK단을 연상케 하는 타락한 무리로 그렸으며, 강력한 의지와 성격의 소유자 이반을 나약하고 의지가 여린 햄릿과 같은 성격으로 그린” “무가치한 영화”라는 당 중앙위원회의 비난은 2부를 58년까지 상영금지로 묶어 놓았고 3부의 네가와 편집필름 모두를 불살랐으며 결국 에이젠슈테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빚었다.
  늦깎이 영화감독이 된 셈벤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8편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우편환’이란 뜻의 <만다비>는 그 네번째 영화이자 첫 컬러영화이며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프랑스어와 울로프어판이 있는 이 영화는 국립프랑스영화센터(the Centre National de la Cinematographie Francaise)의 부분적인 자금지원에 힘입어 만들었다. 훌륭한 영화감독이라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영화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의식적으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술집과 집과 공장의 파업을 오가는 도입부의 알레그로와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장례식의 아다지오, 수색·배반·체포·재판·감옥생활을 그리는 알레그로와 해방·시위·폭동·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나가는 격렬한 프레스토의 차례로 영화는 연주된다. 이 계산에 의해 푸도프킨의 <어머니>는 보는  이의 감정곡선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뛰어난 운율의 영화이며 성격과 사건과 극을 하나로 엮어나가는 탁월한 비극이기도 하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독일로 건너가 좌파 지식인으로 연극·영화 연출가가 된 더글러스 서크는 파시즘의 등극과 함께 할리우드로 망명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그에게 싸구려 스릴러나 멜로드라마 시나리오를 던져주며 돈은 많이 못 주지만 잘해보자고 당부했고, 그래서  만든 작품이 <히틀러의 미치광이>(1943년), <수수께끼 잠수함>(1950년) 등과 같은 저예산 장르영화들이었다. 브레히트의 할리우드에 관한 시 “아침마다 밥벌이하러 거짓을 사주는 시장으로 가지/희망에 부풀어 올라 나는 장사꾼들 틈에 끼지”는 서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편의 시나리오를 팔고 할리우드를 따나야 했던 브레히트와는 달리 서크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생존했고,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전복하여 아이젠하워 시대의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능력있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채플린은 삶과 사회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이었던 대신에 그것을 묘사하는 무기로 웃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그가 웃음을 택했던 것은 불우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거부했던 심리와 철벽같은 세상에 대한 전술이었겠지만 이 속에 상업주의적 타협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밝은 화면과 또렷한 사물들, 그리고 사건 위주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 등 그의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모두가 그랬듯 예술보다는 상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들, 특히 <황금광시대>가 세상을 향해 내쏘았던 질타는 사회비평적 모범으로서 이후의 영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과 더불어 우리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많은 현대영화에서 채플린 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감미로운 선율이 더해져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디어 존>. 두 연인의 짧지만 찬란한 사랑과 7년간의 기다림의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주는 <디어 존>의 음악은 영화 <페임>과 <드림걸스>의 음악을 작업했던 데보라 루리가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2009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전도 유망한 최고의 작곡가 10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데보라 루리와 함께 <분노의 질주> 등 50여 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담당한 해피 월터스, 골든 글로브 후보작 <브라더스>의 시즌 켄트가 만나 감미롭고 애잔한 <디어 존>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탄생되었다. 특히 데보라 루리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곡가이자 편곡가로 명성을 높이며 영화 <모짜르트와 고래>, <원티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다양한 작품의 영화 음악을 작곡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디어 존>의 OST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청순한 매력의 주인공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직접 부른 ‘Little House’ 이다. 잔잔한 기타 선율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녀의 러브송은 ‘사바나’의 애틋한 심경을 그대로 전해준다. 또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자 아일랜드 출신의 듀엣 ‘스웰시즌’이 부른 ‘The moon’ 등 주옥 같은 곡들이 서정적인 영상과 만나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둘째, 정치 성향의 일차원적 축은 애초에 진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대안 모델이 있다. 사람들은 그저 각각의 쟁점에 대하여 먼 과거의 수렵-채집 환경에서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입장을 안성맞춤으로 취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한 쟁점을 대하는 견해를 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쟁점을 대하는 견해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부의 재분배를 찬성하면서도 동성결혼 합법화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왠지 미래당의 유승민 대표가 생각난다. ). 한 개인의 입장은 각각의 쟁점 영역에 맞추어서 쟁점마다 따로따로 정해진다는 이 모델은 ‘영역-특이적 모델(Domain-Specific Model)’로 불린다. 3)여러 쟁점에 대한 정치적 신념의 개인차가 진화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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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디언의 화살이 날아오고 하나씩 죽어가는 뗏목 위에서 혼자 남은 아기레는 외친다.  “나는 신의 분노이다. 멕시코를 코르테스로부터 되찾고,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내 딸과 결혼해  함께 순수한 왕국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참고 견뎌나갈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있겠는가. 나는 신의 분노이다.”  신의 저주받은 정복자를 자처하는 아기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의 연기가 일품이다. 마치 세계 정복의 망령에 휩싸였던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모든 독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보는 연대기적 내러티브를 따르면서도 외적 상황은 리얼리즘으로, 내면세계는 표현주의적 미장센으로 잡아내고 있다. 전자가 교훈극을 낳는다면 후자는 비극을 예고한다. 자보가 화려한 기법으로 부각한 회프겐(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의 자기도취적 무대연기는 < 천국의 아이들>의 장 루이 바로처럼 관객을 흡인해 버린다. 비극이 너무 생생해지면서 교훈극을 상투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영화는 2차 대전 이전의 상황에서 끝나지만 그륀트겐즈는 전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그는 뒤셀도르프와 함부르크 시립극장장을 지내며 뒤렌마트, 오즈번 등의 현대극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 파우스트>를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자보의 해석대로라면 그는 결코 메피스토텔레스를 다시 맡지는 않았을 것이다. <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제4화는 피렌체다. 레지스탕스의 영웅 루포를 찾아 나서는 여자와 남자 이야기다. 시가전의 틈을 타 그들은 거리를 가로질러 가지만 남자는 살해된다.  다섯번째 에피소드는 전쟁중에 휴식을 취하는 듯한 삽화다. 어느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찾은 미군 선교군목 세 사람과 수도승과의  하룻밤이다. 수도승은 군목 중 유대교인이 한 명 있다고 놀란다. 군목들은 비참과 가난의 전쟁터에서 모처럼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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