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Deere 스노 블레이어 |트랙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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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백 필름으로 찍힌 이 영화에서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등장인물들은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죽이고 체포하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군의 도덕적 우월성이 암시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백군보다 조금 더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처형한다는 사실 뿐이다.  처형과 학살과 전투의 풍경을 따라가기 쇼트로 묘사하면서, 얀초는 서로 이기고 지는 힘의 부침 현상을 하나의 롱쇼트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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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중세와는 달리 이 영화의 후반부는 종교적 구원의 영원성보다는 잔 다르크의 삶에 대한 열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삭발당한 채 화형대에 올라 “오늘밤 나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독백을 할 때, 그리고 바람에 날려가는 머리카락과 하늘을 나는 비둘기들, 어머니의 품에 편안히 안긴 아기의 이미지들이 보여질 때, 천상의 세계는 멀어 보이고 지상은 그보다 가까워 보인다.
  혁명 이후 현재까지 쿠바영화산업기구의 주요직을 맡고 있는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이 영화를 통해 사회변혁을 위한 영화의 미학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제3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쿠바의 사회주의나 거기서 꽃피웠던 영화문화가 이제는 분명히 쇠퇴의 길로 들어섰지만 아직도 그는 영화를 통해 그 사회의  모순과 딜레마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의 <딸기와 초컬릿>(93년)이 그 예다. <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
  얀초는 한국에 온 적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는 문화 행사의 하나로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찍었던 얀초는 그 때 어느 대학 영화과 학생들과 가진 비공개 대화 석상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지난 시기의 우리 선배들은 현실에 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참을성있게 웃으며 혁명하자.” <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씨네21 기자>
[병 속에 담긴 편지]를 시작으로 [워크 투 리멤버], [노트북], [나이츠 인 로덴스], [디어 존]까지 5편의 작품이 영화화 되어 독자들은 물론 전세계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왔으며, 그의 새로운 소설 [디어 존]은 출간이 되기 전부터 할리우드의 수 많은 제작진들로부터 영화화 제의를 받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작품 중 국내 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감동 멜로 [노트북]은 1995년 10월 초판 이후 천 만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56주 이상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004년에 영화화된 <노트북>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은 명작으로 꼽히며 최근 미국의 저명한 영화 사이트 movies.sky.com에서 선정한 연도별 심금을 울린 걸작 영화 50편 중 2004년을 대표하는 감동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 서로 다른 두 남녀의 눈부신 사랑을 그린 작품 [워크 투 리멤버]는 ‘뉴욕 타임즈’가 집계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17주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전세계에 33개의 언어로 출판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는 바로 이 혼란에 관한 혼란스런 영화다. 여기서도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로버트 드 니로)은 베트남에서 귀향한  제대군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지만 그 원인을 찾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결단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그도 모른다. 트래비스는 택시를 몰고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의사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으며 몽유병자처럼 현실에 발을 대고 있지 못한 그에게 도시는 형태를 잃고 떠다니는 이미지일 뿐이다. 뉴욕의 뒷골목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순간적이고 산발적인 회상들, 정지되고 파편화하는 움직임들,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보여주는 뉴스영화와 사진들, 그리고 영상에 질의하고 또 그와 어긋나는 세르지오의 내적 독백은 이 영화를 혁명과 혁명이 한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변증법적 형식으로 그려낸 강도 높은 보고서로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우리를 설득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질문을 받을 뿐이다.
이미 몇가지로 우상화된 영화라는 매체의 성격을, 심각하고 무거운 스타일을 동원하기보다 이렇게 깜찍하고 귀여운 영화를 이용해 바꾸는 작업은 한층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에릭 로메르는 60∼70년대 영화사에 ‘영화적 문학성’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을 소개했고 그곳에서 18세기와 20세기는  매우 역설적이고 희극적인 방식으로 만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 만남 속에서 유럽 영화의 우상적 얼굴, 즉 고급 예술로서의 문예 영화는 매우 명랑한 모습을 띠게 됐다. 그래서 예술 영화관을 나오며 반드시 철학자의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게 됐던 것이다.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영상원 교수>
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만일 볼셰비키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했으며,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
  멀쩡한 신사복 사내가 치통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동생이 양공주가 된 사연과 동생 영호의 은행 강도짓이라든가 딸의 불신 등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요 배경인 집안을 비춘 화면 구도와 빛의 명암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과 그것을  잡은 카메라 렌즈의 깊이 등을 눈치채기 공을 좀 들여야 한다.
  자보는 연대기적 내러티브를 따르면서도 외적 상황은 리얼리즘으로, 내면세계는 표현주의적 미장센으로 잡아내고 있다. 전자가 교훈극을 낳는다면 후자는 비극을 예고한다. 자보가 화려한 기법으로 부각한 회프겐(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의 자기도취적 무대연기는 <천국의 아이들>의 장 루이 바로처럼 관객을 흡인해 버린다. 비극이 너무 생생해지면서 교훈극을 상투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영화는 2차 대전 이전의 상황에서 끝나지만 그륀트겐즈는 전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그는 뒤셀도르프와 함부르크 시립극장장을 지내며 뒤렌마트, 오즈번 등의 현대극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파우스트>를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자보의 해석대로라면 그는 결코 메피스토텔레스를 다시 맡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그러나 당시 언론 재벌이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자신의 스캔들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에서 이 영화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장하였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였으며, 오손 웰즈는 평생 그 빚 속에서 헐떡거리며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복권한 <시민 케인>이 모든  영화평론가들의 열광이며 모든 영화감독들의 절망이 되기는 했지만, 오손 웰즈 자신에게는 지옥이었다. <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는 네오레알리슴에서 출발해서 자기 환상에 대한 탐닉으로 영화 인생을 끝마친 인물이다. 그는 영화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영화인 그런 삶을 살았는데 이 점에서 그의 영화는 내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주관주의의 범주로 틀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비평적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격정성과 인간내면에  대한 관심이 뿜는 그의 영화의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편제>는 그 교직하는 그물에 포착된 것이고, 그 교직하는 품새를 우리는 비평적 틀이라고 부른다. 이 틀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역사적이며 때론 폭력적이라서 투쟁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앞질러 말한다면, <서편제>는 결코 임권택의 <만다라>를 뛰어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보다 앞서 보였던 것은 탄생의 시공간적 차이와 헐거운 비평작업 탓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훨씬 투쟁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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