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용 로더가 달린 농장 트랙터 |Case 트랙터”

  이는 네오레알리슴 시기에 각본쓰기, 단편영화 만들기로 습작기간을 거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그 전통을 빠져나오면서 던진 말이다. 안토니오니는 그 사람의 내면을 <어느 사랑의 이야기>(50)에서는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외침>(52)에서는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황폐한 여정을 통해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정사>에서부터 그는 산업사회로 급격히 진입하고 있는 이탈리아 현대인의 내면을 그려낸다. 안토니오니에 의하면 그 현대인은 기술의 진보에 한걸음 처지는 도덕적 수단으로 세계를 산다. 그래서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 인간들, 사물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성이나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모험을 생성해낼 정서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들에겐 샹송 <고엽>의 작사자로 더 알려진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시나리오와 대사를 담당했다.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3년3개월간의 제작 끝에 이뤄진 작품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서민들의 기질과 사랑의 끈질긴 근성을 보여줌으로써 나치에 대한 저항으로 평가되었던 <인생유전>에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갈채를  보냈다. 카르네는 프랑스가 해방되고 다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 의상제작자 제리코 역의 로베르 비강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피에르 르누아르로 교체시켰다.
한 젊은이가 심연 위에 걸친 줄을 탑니다. 그는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지만 다시는 절대로 줄타기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그의 묘기를 기억하고 자기들끼리 그것을 회상하는데도 그는 그 일에 대해 말도 꺼내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삶을 다시 시작하고 결국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겉보기에는 아주 잘 삽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두 번 다시 과거의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 친구들은 과거의 그를 알고 있고,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허공에서, 거기 있었던 짧은 순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모습, 하나의 인식이 스쳐 지나갔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본문 183면
  세일즈가 메이트원과 인연을 맺은 사연은 오래 전부터다. 세일즈가 웨스트 버지니아 지방을 무전 여행할 적인 60년대에 이  지방 사람들에게 광산전쟁과 메이트원 학살 사건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좀 더 자료 조사를 한뒤 세일즈는 <노조의 권리>라는 소설을 썼고, 거기에 담지 못한 부분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8년동안 준비해서 4백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결실을 톡톡히 맺었다. 평자에 따라서는 <메이트원>을 80년대 미국 독립영화계의 최고작으로 치기도 한다. 그리고 바다  건너 우리 나라에
그리고 학생들은 마침내 프랑스 국기를 내려버리고 자신들의 혁명기를 올린다. 그리고 지붕 위를 걸어가며 하늘을 향해 노래한다.  <품행 제로>는 종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조롱 때문에 “사회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그 당시엔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과 풍자 코미디 그리고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보이는 이 실험성 높은 영화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인다.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그는 신경질적인 노란색을 부각시켰으며, 로버트 스택에게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은 발성법을 훈련시켜 관객들에게  청각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크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관객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가 10여년 남짓 기다려야 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어두운 노래를 불렀던 그의 영화들은 이제 그 어두운 시대의 지혜로운 기념비로 영화사에 서 있다.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
  부뉴엘이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첫 작품 <안달루시아의 개>는, 당시 파리 문화계에 유행하던 예술지상주의적인 전위영화에 대한 공격이라는 만든 이들의 의도와는 달리, ‘예술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이라는 오해(?)와 함께 부르주아 문화인들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이어 부뉴엘이 <안달루시아의 개>의 성공에 힘입어 만들 수 있었던 다음 영화 <황금 시대>는, 일부 좌파 지식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격렬한 분노와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전함 포템킨의 수병 반란, 그리고 오데사 계단에서의 대학살극이 <전함 포템킨>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가 무기가 될 수 있으며, 대중교육책이며, 뛰어난 선동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억누르는 전함의 장교와 억눌리는 수병들, 압살하는 백군 기병대와  코사크 군대와 피를 흘리는 인민들, 모든 것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하여 표현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극장의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던 에이젠슈테인에게 그러한 서술상의 대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작 에이젠슈테인을 에이젠슈테인으로 만든 것은 그의 화법이었다. 그것은 흔히 몽타주로 알려진 것이다.
두 연인의 짧지만 찬란한 사랑과 7년간의 기다림의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주는 <디어 존>의 음악은 영화 <페임>과 <드림걸스>의 음악을 작업했던 데보라 루리가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2009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전도 유망한 최고의 작곡가 10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데보라 루리와 함께 <분노의 질주> 등 50여 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담당한 해피 월터스, 골든 글로브 후보작 <브라더스>의 시즌 켄트가 만나 감미롭고 애잔한 <디어 존>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탄생되었다. 특히 데보라 루리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곡가이자 편곡가로 명성을 높이며 영화 <모짜르트와 고래>, <원티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다양한 작품의 영화 음악을 작곡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디어 존>의 OST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청순한 매력의 주인공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직접 부른 ‘Little House’ 이다. 잔잔한 기타 선율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녀의 러브송은 ‘사바나’의 애틋한 심경을 그대로 전해준다. 또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자 아일랜드 출신의 듀엣 ‘스웰시즌’이 부른 ‘The moon’ 등 주옥 같은 곡들이 서정적인 영상과 만나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피자집 종업원 무크로 출연한 이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리는 일종의 메신저처럼 각기 다른 인종의 입장을 피자를 배달하듯 관객들에게 전한다. 그 전언에 따르면, 증오범죄적 태도로부터 자유로운 인종은 없다. 백인경찰, 흑인계, 이탈리아계, 한국계 모두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고 저주한다.  저중산층 유색인종들이 백인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인종차별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피라미드식으로 재생산하는 셈인데, <똑바로 살아라>에서 흑인과 이탈리아계의 대립은 결국 방화, 구타 그리고 살인으로 치닫는다.
  그는 “공포와 피로 얼룩진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국가 지도자들의 의외성과 비밀, 조폭성과 공포, 모스크바 공국을 위한 이반의 활동과  투쟁을 전면적으로 그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전체주의 국가에서 그러하듯 역사영화는 고도의 정치적 은유를 띠게 마련이다. 여기서의 이반이 곧 스탈린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 영화임을 알고 있었다.
  자무쉬는 원래 이 영화의 1부인 <신세계>를 단편영화로 발표했었다. 영화가 평판이 좋자 자무쉬는 두 단락을 더 붙여서 장편영화로 공개했다.  그러나 1부 ‘신세계’에 이어 추가된 ‘일년 후’와 ‘천국’은 1부의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며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장소이동 모티브에는 더 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다.  자무쉬는 그러나 <천국보다 낯선>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서 <천국보다 낯선>의 신선함에 맞먹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
영화는 의식적으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술집과 집과 공장의 파업을 오가는 도입부의 알레그로와 아버지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장례식의 아다지오, 수색·배반·체포·재판·감옥생활을 그리는 알레그로와 해방·시위·폭동·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나가는 격렬한 프레스토의 차례로 영화는 연주된다. 이 계산에 의해 푸도프킨의 <어머니>는 보는  이의 감정곡선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뛰어난 운율의 영화이며 성격과 사건과 극을 하나로 엮어나가는 탁월한 비극이기도 하다.
<십계>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텔레비전 영화라는 한계를 오히려 조건삼아 독자적인 형식미학을 추구한다. 이 미학의 기초에는 빛과 소리와 음악으로 유기적 전체를 구성하는 견고한 리얼리즘이 놓여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피어난 것은 리얼리즘의 꽃이 아니라 예의 영상의 윤리학이다. 그것은 특히 빛으로 표현된다. 한 화면 안에서 푸른빛과 흰빛과 붉은빛을 변화무쌍하게 나누고  모으고 다시 나누는 빛의 미학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블루>, <화이트>, <레드>라는 색채 삼부작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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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저자 니콜라스 스파크스,영화 [아바타] 누른 원작 소설 이라고 해서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영화로 디어 존을 보지 못했고 책으로 읽었지만 나는 사실 영화보다는 책으로 읽는 것이 더 좋았다이미 너무 이쁜 한쌍의 존과 사바나가 책표지에 있기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존과 사바나를 만들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존과 사바나가 눈에 보이는듯 읽을수가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존은 아버지와 잘 맞지가 않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분이며, 주화수집과 관련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이야기가 불가능한 분이시다,,그래… 더보기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는다. ……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는 대상에게 투표한다. ”라고 말했다. 14) 레이코프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저소득층은 자신을 부유층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부유층의 구미에 맞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셈이다. 어쨌든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공약한 이득이 “크고, 즉각적이고, 널리 홍보되었을” 때를 제외하면, 유권자는 경제적 이득에 이끌려 투표하지 않는다고 최근의 연구들은 결론 내리고 있다. 15)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감독 제인 캠피온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을 <피아노>의 위력을 빼놓은 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고, 그 여파로 한국의 극장들은 <내 책상위의 천사>나 <스위티> 같은 이전 영화들을 속속 불러들였다.  그는 이제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산업의 지역적 변방성에 여성이라는 성적 변방성이 지운 이중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여성감독이 됐다. 
  고향이나 조국을 떠난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특히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좀 유별나 보인다. <향수>에서 보이는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 처절하며 또 전혀 변함이 없다. 18세기에 실존했던 러시아의 음악가 파벨 소스노프스키는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에 음악유학까지 떠나지만 향수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귀향한 뒤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르던 소련의 시인 고르차코프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고향과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자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바로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삶이다.
  <패왕별희>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던 해에 우리의 <서편제>가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으나 아깝게도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우리의 민족적인 판소리의 한이 세계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커다란 교훈을 준다.  그 교훈은 세계 영화제에서 어깨를 겨누려는, 또는 세계 영화시장에 뛰어들려는 한국 영화인 모두가 한번쯤 숙고해 보아야 할 점이다. <패왕별희>가 영화적 형식과 소재 양쪽에서 세계적 보편성을 갖춘 작품이었던 데 반해 <서편제>는 그 둘을 다 결여하고 있었다면, 이제 우리 영화인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서울예전교수>
 그는 시카고행 열차에서 이브 켄들이라는 금발의 미녀 산업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속삭인다. 켄들의 제보로 손힐은 41번 국도변에서 캐플런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헬리콥터의 습격을 받는다. 켄들에게 속은 것이다. 손힐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납치범의 두목격인 밴덤과 함께 나타나는 켄들을 본다. 그들이 조각품을 사가지고 사라지자 손힐은 소란을 피워 경찰에게 끌려가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사우스다코타주 라피트 커다란 대통령 얼굴석상이 있는 러시모어 산 아래 카페에서 다시 밴덤과 나타난 켄들을 만나게 된다. 켄들은 권총 두 발로 손힐을 쓰러뜨리고 사라진다. 한 대학교수가 손힐을 구출해 차에 싣고 숲으로 오나, 그것은 공탄이었다. 대학교수는 자신은 CIA 고문이고, 켄들은 밴덤의 정부라고 말한다. 밴덤은 경매장에서 구입한 조각품 속에 국가기밀의 마이크로필름을 넣어 그날밤 함께 비행기로 탈출한다.
바톤이 어린애 같은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임을 암시하는 대목은 옆방의 투숙객 찰리와의 만남을 통해 두드러진다. 찰리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진실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바톤은 자아도취의 상태에서 숨가쁘게 자기 말만 이어나간다. 말하고 싶었으나 저지당한 찰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곧 영화의 절정부다. 찰리는  미치광이 살인광 문트인 것이다. 바톤이 묵고 있는 얼(Earle) 호텔은 이름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공간처럼 존재한다. 바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누른 차임벨 소리의 한없는 이어짐, 호텔 복도의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 외부의 소음이 막힘없이 전달되는 바톤의 방. 바톤은 그 소리들을 유념하기보다는 불평한다. 창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큰코 다친다.
  장르-스타-스튜디오 시스템의 공식으로 운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발표된 1967년은 ‘혁명의 해’로 불릴 만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또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60년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영화로 담아낸 결과였다. 
  잉마르 베리만이 이 절망적인 귀향기에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따서 ‘제7의 봉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아다시피 그것은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중세를 빌어 현재의 인류가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극단의 비관주의를 표출했거나 감히 다룰 수 없는 주제를 건드린 셈일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인간은 그 봉인을 그대로 덮어둘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가지지 못한 것으로 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제7의 봉인>은 교리문답에 관한 것도 신학논쟁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프랑스의 ‘필름 다르'(예술 영화)와 고몽사의 작품들, 이탈리아의 스펙터클 등이 각 에피소드들마다 적절하게 인용된 이 영화는 유럽 영화를 미국식으로 길들이려는 그리피스의 야심에 찬 스펙터클이며, 특히 둥근 기둥에 코끼리들이 늘어선 거대한 바빌론 세트 장면은 이후 “할리우드 바빌론(탐욕과 악의 상징)”이라는 미국 영화산업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 바빌론에서 그리피스는 바벨탑의 붕괴 이후 잃어버린 보편적 언어의 복권을 열망했고, 그것이 바로 미국 영화의 언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세계 영화 시장은, 그의 그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
<디어 존>은 <아바타>를 잠재울 기대주로 물망에 올랐던 영화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괴물을 잠재운 것은 저 자극적인 액션도 판타지도 스릴러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내내 판타지와 액션, 스릴러 영화들이 오랜 기간 동안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있던 가운데, 신선하고 감성적인 영화에 목말라하던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 영화가 선두를 차지한 것은 남다른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010년 봄, 2주간의 짧지만 찬란한 사랑과 7년간의 가슴 벅찬 기다림을 감성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진심 어린 연기로 그려낸 <디어 존>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촉촉한 봄 비 같은 영화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실 것이다.
레녹스에 자리한 획기적인 파스타 바 누델(Nudel)은 구운 토마토와 금방 만든 리코타를 넣은 펜네를 비롯해, 이 지역 농부들이 사시사철 재배하는 신선한 농산물을 사용한 메뉴를 선보입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아침이나 점심을 찾으시나요? 애머스트에 있는 위트베리 베이커리 앤 카페(Wheatberry Bakery and Café)에 자리를 잡아 손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현지산 유기농 곡물과 유제품, 고기, 치즈 및 식품을 경험해보세요. 특히 수제 채식 버거를 꼭 드셔 보세요.
  그러나 보통 영화에서 생략해 내버리는 우리 일상의 진실의 순간들, 인과의 고리가 없이도 생겨나는 무수한 순간들, 너무나 일상적이라 존재하지 않는 듯한 순간들 속의 현대인들을 이 영화처럼 잘 묘사해낸 작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말없음, 미세한 움직임, 공허한 표정, 방향잃은 자태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화면구성과 길고 짧음의 리듬감을 가진 촬영과 편집속에서 스스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플롯이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 관객 스스로가 빈 듯한 화면, 무표정한 인물들, 배경이 되는 지형과 인물간의 관계를 읽으며 그 너머의 이야기를 쌓는 것이다.
  그의 이후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가 보는 세네갈 사회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배어 있다. 주인공  디엥은 허풍선이에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그의 두 아내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그는 두 아내만큼의 지혜도 없다. 영화는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세계의 사소한 탐욕과 질투뿐만 아니라 이 남자를 주변의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자비에 맡겨버린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관료들과 탐욕스런 사업가를 비판한다.  영화는 이런 모든 과정을 배우들의 연기, 특히 주인공의 몸짓, 트림, 불평하는 소리로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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