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도구 |John Deere 트랙터 부속품”

  그의 영화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대상인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장기간의 현지 조사를 통한 사전작업은 다큐멘터리 영화작가들에게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체계적인 방법론의 구축보다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문화의 이해에 의존한 점, 살아 있는 문화를 필름에 담기보다는 이미 사라져버린 원형의 복원에 집착한 점은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필자: 김홍준/영화감독>
  흑백 필름으로 찍힌 이 영화에서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등장인물들은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죽이고 체포하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군의 도덕적 우월성이 암시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백군보다 조금 더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처형한다는 사실 뿐이다.  처형과 학살과 전투의 풍경을 따라가기 쇼트로 묘사하면서, 얀초는 서로 이기고 지는 힘의 부침 현상을 하나의 롱쇼트로 보여준다.
  이 곳에 ‘죽음의’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그는 의적대장 코이라나를 죽이고자 지주가 고용한 킬러다. 코이라나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데 성공한 안토니오에게 성녀는 말한다. 민중들은 형제이며 형제를 죽이는 자는 심해로 떨어질 것이며 코이라나가 죽게 되면 곧 민중도 죽게 될 것이라고. 성녀는 그에게 ‘끝없는 전투’ 혹은 ‘끝없는 불길 속을 걷기’를 촉구한다.
  카르네는 1840년대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 극장가 블르바르 뒤탕플을 무대로 인간극을 연출했다. 극장과 나이트 클럽이 줄지어 서 있던 환락가이자 범죄의 거리인 이곳에서 팬터마임 연기자 바티스트 뒤브로아주는 스테이지에서 나체춤을 추는 가랑스와의 애정을 축으로 장장 3시간35분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랑스를 둘러싼 뒤브로, 극작가 피에르 라스네르, 연극배우 프레데리크 르메트르 등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은 가상적인 것이었다.
건설현장에서 땅을 파는 굴삭작업, 토사를 운반하는 적재작업, 건물을 해체하는 파쇄작업, 지면을 정리하는 정지작업 등에 사용하는 건설기계.[4] 기본적으로 쇼벨 끝에 달린 버킷이 기본 용도로 쓰이며 좁게 파지만 좀 더 깊게 팔 수 있는 작은 버킷과 착암기, 집게 등의 장치등도 굴삭기용으로도 존재한다. 이중 착암기의 역할은 굴착기(천공기)와 비슷하게 하기 때문에 간혹 굴착기로 오해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이 굴삭기를 굴착기라고 바꿔 부르라고 하는 게 이 이유인지도 모른다.
또한 ‘다기능 집게’는 좌·우 날개의 직선운동 및 동시 동작으로 주변 적재 물과의 간섭에 따른 불필요한 동작을 방지하고 능률과 안전성을 대폭 향상시켰다. 더불어 안전가이드 채용으로 2단 베일작업 및 높은 곳에서 베일작업시 베일의 낙하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 트랙터와 운전자를 보호하며, 베일집게 측면 볼트에 고무캡을 씌워, 베일의 찢김 현상을 최소화해 보다 안전한 베일작업이 가능토록 했다.
아울러 상기한 “로우더 커플러 장치”는 핸들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작업기와 로더의 협소한 공간에 작업자가 들어가야 하므로 작업의 번거로움 및 불편함으로 인해 작업효율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작업자가 협소한 공간에서 불완전한 자세로 핸들을 조작할 경우 연령이 많은 작업자의 경우에는 허리와 같은 관절부위에 심한 신체적인 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갖게 되었다.
  멀쩡한 신사복 사내가 치통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동생이 양공주가 된 사연과 동생 영호의 은행 강도짓이라든가 딸의 불신 등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요 배경인 집안을 비춘 화면 구도와 빛의 명암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과 그것을  잡은 카메라 렌즈의 깊이 등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공을 좀 들여야 한다.
전남 함평군 (주)송현(대표이사 오대석)은 베일집게 전문생산업체로 2003년 설립 이래 전문화된 연구개발(R&D)을 통해 로더 부속작업기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회사다. 각종 농작업기를 자동으로 탈부착 할 수 있는 원터치(SH-450)제품을 선보인데 이어, 기존 작업기에 새로운 기능을 장착한 다기능 베일집게와 공구 없이 장착 가능한 무논정지기, 복합작업기 S링크 등 획기적인 상품을 잇달아 출시했다.
 그는 시카고행 열차에서 이브 켄들이라는 금발의 미녀 산업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속삭인다. 켄들의 제보로 손힐은 41번 국도변에서 캐플런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헬리콥터의 습격을 받는다. 켄들에게 속은 것이다. 손힐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납치범의 두목격인 밴덤과 함께 나타나는 켄들을 본다. 그들이 조각품을 사가지고 사라지자 손힐은 소란을 피워 경찰에게 끌려가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사우스다코타주 라피트 시티의 커다란 대통령 얼굴석상이 있는 러시모어 산 아래 카페에서 다시 밴덤과 나타난 켄들을 만나게 된다. 켄들은 권총 두 발로 손힐을 쓰러뜨리고 사라진다. 한 대학교수가 손힐을 구출해 차에 싣고 숲으로 오나, 그것은 공탄이었다. 대학교수는 자신은 CIA 고문이고, 켄들은 밴덤의 정부라고 말한다. 밴덤은 경매장에서 구입한 조각품 속에 국가기밀의 넣어 그날밤 함께 비행기로 탈출한다.
  고다르는 미셸과 함께 59년 파리를 달린다. 알제리가 프랑스 대혁명정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실존주의가 구조주의에 자리를 양보하고, 드골정권이 보수반동주의로  변질하고 있는 파리에서 ‘새로운 세대’의 공기와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영화는 영화 스스로 질문한다. 고다르는 영화사상 최초로 ‘영화에 관한 영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는 스스로의 자의식을 갖고 주인공과 이야기와 작가 사이에서 영화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고, 화면은 점프 컷과 롱 테이크의 수사학으로 영화의 불문율을 차례로 돌파한다. 영화는 지켜야 할 문법을 갖고 있지 않은 담론이며, 고다르는 영화란 ‘네 멋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선동한다.  고다르는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에서 이론이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영화에 관한 이론이란 영화(들)뿐이라고 대답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고다르는 여전히 영화로 영화를 말하는 영화평론가인 셈이다.
오텔로 마르텔리의 카메라와 니노 로타의 음악은 이 영화가 고전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만약 앤터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의 역을 제작자의 고집대로 실바나 망가노와 버트 랭커스터가 했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펠리니가 이 영화를 그의 ‘영감의 원천’인 아내 마시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기억할 만하다. 동시에 펠리니가 말하는 사랑을 통한 구원이 사실은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주관주의와 리얼리즘을 잇는 통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이탈리아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네오레알리슴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8과 1/2>은 <무방비도시> 등 네오레알리슴의 걸작 대본을 도맡아 쓴 페데리코 펠리니와 그 네오레알리슴의 결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제목  그대로 펠리니의 “8편 반째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크리스티앙 메츠)다. <달콤한 인생>에 로마의 퇴폐적이고 나태한 부자들의 생활을 보도하는 기자로 나온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역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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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이야기는 마카도의 독재가 바티스타의 독재로 대치되던 1930년대 정치투쟁 속의 루시아를 다룬다. 그는 담배공장에서 기계적인 일을 하면서 혁명운동가  알도와의 사랑을 회상한다. 그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도 행동가가 되어 시위에 참여했던 일, 알도의 경찰 습격, 마카도를 타도했을 때 그들이 잠시 누린 행복, 그리고 알도를 죽게 한 폭력적인 정치활동 등이 루시아의 내레이션과 함께 재생된다. 이야기는 알도의 아이를 가진 채 혼자가 된 루시아가 카메라를 직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현대 일본영화사는 60년대 이전의 막강한 거장인 구로사와, 오즈, 미조구치 등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다 실패한 역사와 같다. 살아있는 유일한 거장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조차도 50년대 전성기의 자신을 극복하려다 실패했다. 그는 이미 50년대에 <라쇼몬> <산다> <7인의 사무라이> 등으로 절정기를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작이  54년에 만든 <7인의 사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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