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트랙터 John Deere 트랙터 중량”

  19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서부’는 때묻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며, 이상향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제 그런 서부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무덤을 파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살인강도 머니를 그토록 사랑해 주었던 여자 클라우디아는 이미 죽어 있다. 따라서 그의 진짜 관심은 존 포드의 <추적자들>이나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처럼 서부 영화 장르를 성찰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비춰지는 오염된 세상으로 현실을 은유하는 것이다. 그는 옛날의 완벽한 세상, ‘퍼펙트 월드’를 꿈꾸는 순수한 보수주의자인 셈이다. <필자: 김경욱/영화평론가>
  영화 마지막 부분의 “한때 눈이 멀었지만 지금은 볼 수 있다”는 성경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제이크는 비판받을 인물이긴 하지만 동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젊은 제이크 라 모타와 늙은 제이크 라 모타, 긴장된 챔피언으로서의 제이크와 몰락한 삼류배우로서의 제이크는 모두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거나 편안한 성격을 창조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의 슈도(의사·疑似)마조히즘에 대한 심리연구로서 탁월한 의미를 가진다. <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
 1987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잘못 가져온 친구의 숙제장을 돌려주기 위해 친구집을 찾아 헤매다 하루해를 다 보내는 꼬마의 이야기를 다룬 <내친구의 집은 어디에?>를 발표해 세계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작품의 촬영지는 이란 북부의 가난한 마을이었고 출연자도 마을 주민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0년 이란 북부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뮌헨을 방문중이던 키아로스타미는 <내 친구…>에 출연했던 꼬마들의 생사가 염려돼 곧바로 귀국해 카메라를 들고 그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을 다룬 작품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다.
 세계 영화사를 빛내는 100편의 영화. 왜 <스모크>가 끼어들었을까? 중국계 미국인 감독의 영화라서가 아니라 색다른 미국영화, 그것도 무척이나 따뜻하고  눈물겨워서 웨인 왕이 나눈 다섯개의 분절 속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비유를 동일성쯤으로 다루는 허술함을 내비치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바로 <성난 황소>와 맞바꿀 수 있다. 아니, 좀더 무리를 하자면, 어두운 삶의 황량함을 그린 <대부>와 살아가는 방법과 답이라곤 도대체 모르겠다고 구시렁거리는 <비열한 거리>(마틴 스코시즈)를 돌아서 나와 굽이굽이 뻗어 있는 <파리 텍사스>(빔 벤더스)의 쓸쓸함으로 침몰하거나 또는 <인생>(장이모)이 내비친 중국인 특유의 역사성 새옹지마를 뉴욕에서 원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로 불리는 1919∼25년 시기의 영화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프리츠 랑의 <숙명>(1921)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신화로 남은 역사의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역사물들이다. 둘째는 표현주의 연극의 무대장치와 연출에 의해 영향받은 괴기스럽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이 부류의 대표작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이다. 마지막 세번째 부류는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극에서 비롯된 이른바 ‘실내극 영화’들이다.
  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현대 터키 속에 남아있는 봉건과 전통과 관습 그리고 군사정권이며 그  억압에서 자유로운 개인이란 영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자유란 것은 이 터키라는 곳에 부재하는 단어로 보인다. 영화에는 어떤 영웅도 없으며 운명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민중들만 있다. 여자들 또한 전통과 관습 그리고 남성의 명분을 위해 존재하는 듯 그저 수동적이다. 영화는 그저 그들을 보여주고 그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그들의 조건은 정치적 목표의 좌절이나 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과의 관계나 소수인종의 상황에서 인물들의 역정이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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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운드가 사라진 뒤의 낯선 침묵, 이미지의 이상스런 유혹,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의 새로운 만남. 영화는 이렇게 늘 실험중이었다. 적어도 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그랬다. 20년대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험 이후 두번째로 맞는 르네상스 시기의 영화들은 새로움이라는 뜻의 ‘누벨'(프랑스), ‘노이에'(독일), ‘노보'(브라질)라는 이름으로 영화 매체를 재구성한다. 영화의 네오 모더니즘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 개봉 첫 주,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영화 <아바타>의 7주간의 흥행 독주를 멈추고 당당히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디어 존>이 2010년 봄, 관객들을 찾아온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디어 존>은 개봉 첫 주, 사흘간 3천 2백 4십만 달러의 수익으로 <아바타>의 2천 3백 6십만 달러의 수익을 큰 차이로 따돌리며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에 사용되는 유대인 학살을 기록한 필름과 베트남전의 분신 장면들은 이렇게 제어할 수 없는 공포를 가시화하는 데 차용되지만 사실 좀 자의식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양과 거미라든지 못박힌 손, 정체성의 융합과 분리 그에 따른 혼란,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어딘지 예술연하는 수사학적 과장으로 보인다. 돌아보건대 베리만의 영화적 실험은 이제 그 시효를 다한 듯이 보인다. 시간은 상징과 상투성의 차이를 급히 무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베리만이 이즈음의 영화사나 영화 연구에서 잊혀진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국립영상원 교수>
  앙겔로풀로스는 프랑스 영화학교 이덱에서 수업했고 시네마 베리테의 선구자인 장 루쉬의 조수로 일했다. 64년 그리스로 돌아와 좌익신문의 영화평을 쓰기도 했으며 그의 첫 영화작업은 시네마 베리테 양식의 기록영화였다.  이후 결코 다작을 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비평적 찬사를 받아왔으며 그리스의 대표적인 감독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특히 <1936년의 나날들>(72년), <유랑극단>(75년), <알렉산더 대왕>(80년), <키테라섬으로의 여행>(84년) 등을 통해 그는 격랑의 그리스 근대사와 사회상을 시적이며 우화적으로 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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