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존 디어 트랙터 _John Deere 백호 로더”

『디어 존, 디어 폴』은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재담가 폴 오스터와 서구 문명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J. M. 쿳시. 두 사람의 만남은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삶의 비극에서조차 유머를 발견하는 다정함과 지치지 않는 열정을 겸비한 오스터와 10년간 그가 웃는 것을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라 동료가 진술할 만큼 진지하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인 쿳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든 두 작가는 편지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디어 존, 디어 폴』은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쿳시의 사생활과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때로 남모를 고충을 겪은 오스터의 인간적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런 부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콘돌의 피>는 제3세계 전투적 민중영화 운동에서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1971년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추방하게 되는데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콘돌의 피>다. 우카마우집단은 이후 본격적인 집단적·전투적 영화인 <민중의 용기>(1971), <제1의 적>(1974) 등을 발표했다. 비록 80년대 이후의 활동은 미약해졌지만 우카마우 집단의 믿음과 실천은 간단히 평가돼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지었다. 모두들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동안 쉬는 세상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 어떤 다른 변형을 가하지 않으려는 자연의 풍경과 한번도 연기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끌어내려는 마음으로부터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정 사이의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영화는 패러디, 정형적인 내러티브의 파괴, 카메라 시점과 음향의 독특한 사용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연히 현대영화라든가 현대영화의 탈을 뒤집어쓴 키치영화와는 더욱 더 거리가 있다. 사실이 그랬다. 현대영화처럼 외면당하지도 않았고, 키치같은 ‘대중적 돌파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감독이 <장군의 아들> 연작이라는 짧은 방황 끝에 유봉, 송화, 동호라는 소리꾼 일가를 통해 ‘소리’와 ‘우리’에 대해 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를 두고 행한 발언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 얘기가 왜 그다지도 위력적이었는가를 먼저 묻는다면 우리는 우선 한국의 영화역사와 역사를 떠올려야 한다. 60년대 초반에 잠깐 해보았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70, 8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잊어버렸다. 90년대에 들어와서야 이제 다시 그 질문(투쟁)을 하게 된 것이다. 얄밉게도 여기에 ‘오도된 민족주의 프로젝트’도 끼어 들었지만.
둘째, 정치심리학자 존 히빙(John Hibbing)과 그의 동료들은 부정적인 자극에 더 크게 휘둘리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일수록 보수주의자가 되기 쉽다고 주장했다. 8) 원래 인간은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을 더 신경 쓰게끔 설계되었다. 웃는 얼굴보다 화난 얼굴이, 신선한 고기보다 썩은 고기가, 화창한 날씨보다 비바람이 치는 날씨가 먼 과거 조상들의 번식 성공도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드넓게 펼쳐진 해변, 다양한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서정적인 영상을 담아낸 <디어 존>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찰스톤에서 촬영되었다. 해변가에 위치한 사바나의 집은 ‘설리반 섬’에서, 두 연인이 처음 만나는 부두는 ‘팜스 아일랜드’에서, 그리고 두 사람이 다투는 장면은 ‘폴리 비치’에서 각각 촬영 되었다. 사바나가 존과 애절한 러브레터를 주고 받는 배경이 되는 학교는 ‘찰스톤 대학’의 역사적인 장소인 ‘랜돌프 홀’에서 촬영 되었다. 이 곳은 영화 <노트북>, <콜드 마운틴>, <패트리어트> 등을 촬영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 마을과 콩고 해안의 군사 기지 역시 찰스턴에서 촬영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마을은 찰스턴 북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할리빌’에서 촬영 되었는데, 마치 전쟁이 일어났던 곳처럼 형성된 탓에 촬영지로 사용할 수 있었고, 콩고 해안의 군사 기지는 설리반 섬에 위치한 ‘포트 몰트리’에서 촬영하였다. 이 곳은 실제로 독립전쟁이 일어났던 곳으로 내전과 관련이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제 상상 속에서 아파트는 흰색으로 페인트칠 되어 있고 빛으로 환하며, 당신의 소설 속 감금 장소처럼 창문이 없습니다. 당신은 책상에 앉아 타자기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 환상 속에서 타자기는 다소 오래된, 덩치 큰 레밍턴입니다(간혹 리본이 달라붙어서 떼어 주어야 합니다. 엄지손가락에 묻은 검은색 얼룩이 이제는 깊이 배었습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생각에 잠겨 앉아 있습니다. 본문 320면
  1964년, 서방세계 영화는 ‘실험주의 시대’라 불릴 만한 모더니즘과 컬트주의에 휩싸였다. 누벨 ‘까이에’ 바그 악동들(고다르, 트뤼포, 리베트, 샤바를)은 막다른 영화로 치달렸으며, 돌아온 거장들(부뉴엘, 브레송, 펠리니, 베리만)은 형이상학적 주제에 매달렸다. 뉴욕에는 앤디 워홀 공장이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60년대 이미지의 계몽주의 프로젝트 속에서 가장 야심적이고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는 두 사람의 러시아인이었다. 한 사람은 <안드레이 루블례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였고, 또 한 사람은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였다.
2 린드버그가 준비한 이번 덴마크 트립은 보통의 출장과는 달리 꽤 독특한 일정이었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하루, 덴마크 예술의 중심지 스카겐에서 하루, 린드버그의 역사가 시작된 오르후스에서 이틀을 머무는 강행군. 이동이 잦으니 자연스레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수륙양용비행기로 시작해 대형버스, 고속보트, 빈티지 미니버스, 트랙터, 자전거까지. 극기 훈련 아니죠?
정리하고 넘어가자. 일반 성향 모델을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코스메뉴만 있다. 우익 권위주의 같은 성격적 특성, 부정적 자극에 대한 심리적 편향, 혹은 도덕을 이루는 다섯 토대가 진보-보수의 일차원적 축에서 각 개인이 어디에 자리 잡을지 지정해준다. 이렇게 추출된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은 경제, 사회집단, 성/번식 등 여러 쟁점에 대한 그 사람의 견해를 한꺼번에 결정한다.
  억압과 폭력의 종식을 향한 싸움은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갈등과 대립을 낳는다.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화면 움직임은 쉽게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과 역사를 가리키지만 이 순환을 담아내는 스타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은 역동적이다.  얀초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멈추지 않는 힘은 새로운 질서를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얀초의 화면 스타일은 암시하고 있다. 얀초의 70년대 이후 작품은 바로 이 역동적인 스타일에 기초한 보다 더 원숙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붉은 시편> <헝가리 광시곡>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분명 극영화다. 줄거리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을 어렵게 헤쳐나가며 두 꼬마를 찾는 과정이 전부이며, 여기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 이는 고다르처럼 이데올로기적이지도 않으며 요즘 범람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르해체라는 시대조류와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런 장르해체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장면들은 파시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 놓인 마리아 브라운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멜로드라마의 예정된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으로 몰아간 것임을  명시하면서, ‘독일은 세계의 주인’이라는 공언 또한 파시즘의 연장선상에서 구축된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들기 2년 전에 일어났던 모가디쉬 하이재킹과 슐레이어 납치사건 그리고 바더·마인호프 테러리스트 살해사건 등은 파스빈더가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우회하며 펼쳐보이는 독일  현대사 읽기가 멜로드라마적 과장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은 미국영화에서 널리 사용되며 종종 오락의 기본 토대가 된다. <성난 황소>는 난폭한 권투시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또한  가혹한 싸움들로 폭력을 전경화한다. 하지만 그 폭력은 매력적이면서도 혼란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오히려 서사구조나 사실주의의 양식적 관습의 사용과 주인공 라 모타의 마음의 풍경으로서의 표현주의적 현실을  통해 링 위에서나 가정 모두에 걸쳐 있는 미국생활에 있어서의 폭력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주로 제이크 라 모타의 실제 삶에 기초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제이크의 삶을 지배하는 폭력의 상징으로서 권투시합장면을 사용한다.
금융 위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 등 국제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에서는 작가적 자의식과 투철한 책임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두 작가는 세계인의 불안을 조장하는 금융 자본주의와 시오니스트의 만행에 분노하고, 단순히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한다. 또한, 암울한 시대를 맞이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사물을 관조하며 결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어떠한 형태의 갈등과 충돌도 끝내 인류 공동의 목적, 죽음이 아닌 생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에 뜻을 같이한다.
매사추세츠 주에는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300명이 넘으며, 해마다 190,000ℓ에 이르는 메이플 시럽을 생산합니다. 3월이나 4월 초 매사추세츠 주의 “슈가 쉑(sugar shack, 수액을 끓여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건물)”에 방문해 메이플 수액을 채취하고 끓여 시럽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세요. 슈가 쉑에서는 아침 식사로 팬케이크를 제공하고 메이플 시럽 사탕과 병에 담긴 시럽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달콤한 기념품을 챙겨보세요. 
 열광 뒤의 외면, 외면 끝의 반성. 임권택의 <서편제>에 대한 우리 동네의 풍경이었다. 여하튼, 좌우지간에, 이 영화가 90년대 한국영화의 그물에 걸려든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그물은 대체로 지겹도록 상투적이며 비린내가 풀풀 나는 것이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하며 정확한 측정이다. 그래서 그물코 사이의 숭숭 뚫린 구멍을 빠져나간 영화들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
연말 대목을 맞아 어느 레스토랑에서 밉살맞게 두 가지 코스메뉴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상상해 보자. 코스마다 샐러드, 수프, 메인요리, 디저트, 차가 나온다. A 코스는 버섯 샐러드, 단호박 수프, 안심 스테이크, 초콜릿 케이크, 커피로 구성된다. B 코스는 시저 샐러드, 브로콜리 수프, 등심 스테이크, 치즈 케이크, 홍차로 구성된다. 말할 필요조차 없이, 이미 정해진 구성 가운데 일부를 손님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저는 A 코스로 주시고요. 아, 샐러드는 시저 샐러드로 바꿔주세요!”라고 해맑게 주문했다간 진상 고객으로 낙인찍힌다.
  그것은 선풍기로 나타나지 않고 라시드가 시침을 뚝 떼고 12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의 자동차 수리점 앞에서 앉아 있을 때, 차고 앞으로 삐죽 나와 있는 적당히 낡은 흰 차 밑에 포진하고 있는 그림자로 나타났다. 그 어둠은 부자의 비밀과 은밀한 삶의 쓸쓸함을 모두 감싸고 있다. 쨍쨍 내리쬐는 햇빛 속에 드러난 아버지 사이러스의 황량하고 황당해하는 표정을 뒤로 하고 라시드는 그 풍경을 그린 흑백 그림을 차고 안에 집어넣고 나온다. 그 흑백 스케치에 의해 풍경은 살아난다. 이후 사이러스는 라시드가 아들인 것을 알고는 그 큰 주먹으로 친다.
  3편에서 마이클은 그 죄의 대가를 가장 처절하게 치른다. 1편과 2편에서 소외돼가는 모습으로만 비치던 마이클이 3편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잃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코폴라는 미국적 악몽의 상징인 마이클을 처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폴라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마이클 이후에도 그가 평생을 걸쳐 소원했던 합법적 기업의 탈을 쓰고서, 한층 더 냉혹한 조카 빈센트에 의해 사업을 계속 확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전방 일측에는 상기 작업기의 일측에 형성된 한 쌍의 연결구와 결합하기 위한 다수의 작업기 결합공을 형성하되 상부 일측에는 양측방향으로 돌출되는 걸림축을 구비하고 하부 일측에는 양측방향으로 돌출되는 고정축을 형성한 한 쌍의 연결부재와, 하부에는 상기 고정축이 삽입될 수 있도록 고정축 삽입홈을 형성하고 후방에는 상기 로더의 선단부와 결합하기 위해서 수직방향으로 일정간격 이격되도록 다수의 로더 결합공을 구비한 몸체를 형성하되 상기 몸체의 상부에는 상기 걸림축이 상부에서 하부방향으로 끼워지도록 걸림홈을 형성한 한 쌍의 결합부재와, 상기 결합부재의 사이에 수평방향으로 연결된 연결프레임과, 상기 몸체의 사이에 형성되어 고정축을 고정 및 유동시키기 위한 로크를 구비하고 상기 로크의 사이에는 회전력을 전달하기 위한 연결축을 형성하되 상기 연결축의 일측에는 상기 결합부재의 외측방향으로 노출되어 작업자가 조작할 수 있도록 락킹레버를 구비하고 상기 연결축과 연결프레임의 사이에는 인장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스프링을 형성한 락킹부재로 구성되어짐을 특징으로 하는 트랙터 작업기용 연결장치.
  히치콕은 일찍이 말했다. “내가 신데렐라를 만든다면 마차 속에 시체를 넣겠다.… 나는 스토리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히치콕과 인터뷰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히치콕에게 형식은 내용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 자체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
  <만약>은 고전적 극영화에 전형적인 일종의 리얼리즘의 경계 안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브레히트적 장치와 초현실주의적 영상에 의해 방해된다. 브레히트적  장치는 8개의 시퀀스를 대표하는 8개의 소제목과 칼라장면 안에 흑백장면을 집어 넣은 것과 관련된다. 연대기적으로 배치된 ‘학교기숙사―신학기’ ‘학교―한번 다시 모이다’ ‘과외활동’ ‘종교적 의식과 로맨스’ ‘훈육’ ‘저항’ ‘이제 전선에’ ‘십자군’이라는 자막은 색채와 흑백장면이 교차되는 편집과 더불어 관객이 영화매체에 대해 깨닫게 하는 ‘거리두기’ 장치로 기능한다.
이 영화에는 셈벤의 작품에서 계속 나타나는 연출상의 특징이  있다. 그는 어떤 특수효과도 거부한다. 야외촬영과 비직업배우의 등장도 또다른 특징이다. 연기는 자연스럽고, 카메라는 예술적 기교나 형식적  탐색에 집착하지 않는다. 널리 배급되어 세네갈 영화, 나아가 아프리카 영화에 주목하게 만든, 최초의 세네갈 영화인 <만다비>는 관료주의와 고립된 전통주의자 사이의 갈등이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통해서만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풍부하게 채색된 아프리카 사회연구라 할 수 있다. <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
  장 르누아르(1894∼1979)는 미장센이라는 영화 수사학과 리얼리즘이라는 미학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구현해낸 감독이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는 회화보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보마르셰의 연극, 그리고 좌파 인민전선의 더 많은 정열을 바쳤다. 르누아르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인 적은 없었으나, 한번도 노동자들과 인민의 편에서 벗어난 적도 없었다. 그러한 세계관이 때로는 모순되고 때로는 모호한 상태로 머물면서도 그의 영화 속에서 사해 동포주의적 휴머니즘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르누아르의 믿음이 담긴 영화가 <커다란 환상>이다.
  흑백 필름으로 찍힌 이 영화에서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등장인물들은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죽이고 체포하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군의 도덕적 우월성이 암시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백군보다 조금 더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처형한다는 사실 뿐이다.  처형과 학살과 전투의 풍경을 따라가기 쇼트로 묘사하면서, 얀초는 서로 이기고 지는 힘의 부침 현상을 하나의 롱쇼트로 보여준다.
  ‘드라마게임’에서 흔히 보았음직한 이 ‘가정 드라마’에서 오즈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또 명료하다. 그에 따르면 “부모와 성장한 자식들을 통해 일본의 가족제도의 붕괴를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가족간의 갈등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재이다. 단지 오즈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이별, 부부간의 갈등 등을 일관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며 절제된 형식적 미학의 완성이 <도쿄 이야기>에 있다. 즉, 연기자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마치 고요히 강이 흐르듯 노부부의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차분히 그려나간다. 감정의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의 정서와 미학관이 절정을 이룬다. 아마도 서구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은 이러한 절제의 미학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 셰프들은 일 년 내내 이 지역의 다양한 제철 재료를 사용해 요리합니다. 독특한 분위기가 일품인 버나즈턴의 크링글 캔들(Kringle Candle)에 자리한 팜 테이블(The Farm Table) 레스토랑으로 향해 이곳에서 직접 운영하는 유기농 농장과 인근 다른 농부가 재배한 재료를 사용한 따뜻한 퀴노아(Quinoa, 남미에서 자라는 곡물)나 구운 뿌리채소 샐러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맛보세요.

One Reply to ““새로운 존 디어 트랙터 _John Deere 백호 로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