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륜구동 트랙터 -나 존 데어 스토어 근처의 존 디어 스토어”

정리하고 넘어가자. 일반 성향 모델을 따르면 우리 마음속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두 코스메뉴만 있다. 우익 권위주의 같은 성격적 특성, 부정적 자극에 대한 심리적 편향, 혹은 도덕을 이루는 다섯 토대가 진보-보수의 일차원적 축에서 각 개인이 어디에 자리 잡을지 지정해준다. 이렇게 추출된 누군가의 정치적 성향은 경제, 사회집단, 성/번식 등 여러 쟁점에 대한 그 사람의 견해를 한꺼번에 결정한다.
  3편에서 마이클은 그 죄의 대가를 가장 처절하게 치른다. 1편과 2편에서 소외돼가는 모습으로만 비치던 마이클이 3편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잃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코폴라는 미국적 악몽의 상징인 마이클을 처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폴라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마이클 이후에도 그가 평생을 걸쳐 소원했던 합법적 기업의 탈을 쓰고서, 한층 더 냉혹한 조카 빈센트에 의해 사업을 계속 확장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감미로운 선율이 더해져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디어 존>. 두 연인의 짧지만 찬란한 사랑과 7년간의 기다림의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를 더욱 애틋하게 만들어주는 <디어 존>의 음악은 영화 <페임>과 <드림걸스>의 음악을 작업했던 데보라 루리가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2009년 할리우드에서 가장 전도 유망한 최고의 작곡가 10명 중 하나로 손꼽히는 데보라 루리와 함께 <분노의 질주> 등 50여 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담당한 해피 월터스, 골든 글로브 후보작 <브라더스>의 시즌 켄트가 만나 감미롭고 애잔한 <디어 존>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탄생되었다. 특히 데보라 루리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재능 있는 작곡가이자 편곡가로 명성을 높이며 영화 <모짜르트와 고래>, <원티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다양한 작품의 영화 음악을 작곡해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 <디어 존>의 OST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청순한 매력의 주인공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직접 부른 ‘Little House’ 이다. 잔잔한 기타 선율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녀의 러브송은 ‘사바나’의 애틋한 심경을 그대로 전해준다. 또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영화 <원스>의 주인공이자 아일랜드 출신의 듀엣 ‘스웰시즌’이 부른 ‘The moon’ 등 주옥 같은 곡들이 서정적인 영상과 만나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또하나 영화의 현대적 맛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 신사도를 물려받아 여성을 영화에서 곱게 다루던 시기에 여성을 세상 안으로 끌어낸  점이다. 자루에 넣어 화물칸에 던지고 그 자루를 나중엔 발로 무자비하게 밟고, 몸이 쓸려버릴 듯한 펌프물 세례를 주고, 목숨을 건 탈주에 어리석게 행동하는 여자의 목을 조르다 할수없어 입맞춤을 하긴 하지만. 당대로서는 진지한 소재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남북전쟁 때의 로맨스는 이러한 현대적 면모들로 패러디가 되고 그의 영화에서 감상은 모두 씻겨나가 버린다.
둘째, 정치 성향의 일차원적 축은 애초에 진화하지 않았다고 보는 대안 모델이 있다. 사람들은 그저 각각의 쟁점에 대하여 먼 과거의 수렵-채집 환경에서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입장을 안성맞춤으로 취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한 쟁점을 대하는 견해를 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쟁점을 대하는 견해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부의 재분배를 찬성하면서도 동성결혼 합법화에는 단호히 반대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왠지 미래당의 유승민 대표가 생각난다. ). 한 개인의 입장은 각각의 쟁점 영역에 맞추어서 쟁점마다 따로따로 정해진다는 이 모델은 ‘영역-특이적 모델(Domain-Specific Model)’로 불린다. 3)여러 쟁점에 대한 정치적 신념의 개인차가 진화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디어존은 영화로 먼저 나와의 만남을 가졌다.군에서 휴가를 받은 이주일동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영화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극장에서 영화를 본것이다.끝의 결말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게 끝났기에 아쉬움이 있었던 영화.그런데 이것이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영화와 원작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하기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이상한 취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나오고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 있다면꼭 읽어보고 싶어하는 나의 호기심이다.이책은 영화와는 많이 다르지는 않지만 중간중간에 약간씩 다른 부분이 있었다.결론부터 … 더보기
채플린은 삶과 사회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이었던 대신에 그것을 묘사하는 무기로 웃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그가 웃음을 택했던 것은 불우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거부했던 심리와 철벽같은 세상에 대한 전술이었겠지만 이 속에 상업주의적 타협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밝은 화면과 또렷한 사물들, 그리고 사건 위주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 등 그의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모두가 그랬듯 예술보다는 상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들, 특히 <황금광시대>가 세상을 향해 내쏘았던 질타는 사회비평적 모범으로서 이후의 영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과 더불어 우리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많은 현대영화에서 채플린 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토목현장의 경우 차륜의 험지주파력 한계 때문에 크롤러타입을 주로 사용하지만 도심지에서는 철제 크롤러에 의한 도로의 노면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육 이하의 휠타입을 사용한다. 괜히 전차들도 궤도에 고뭇조각 붙인 걸 달고 다니는게 아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속칭 ‘미니 장비’라 불리는 운전중량 0.5톤~4톤 정도의 초소형 장비나 소선회 장비들이 도심지 작업에 특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의외로 흔하게 볼수있게 되었다.[9][10]
  <대지>는 인간의 노동으로 기름진 자연에 대한 찬가에서 시작한다. 휘늘어지게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 아래서 한 노인이 사과를 씹으며 죽어간다. 그의 곁에는 노인의 생명을 이어가기라도 하듯 한 어린애가 역시 사과를 먹고 있다. 느리고 시적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농업의 집단화를 둘러싼 지주와 빈농의 갈등으로 긴장을 더해가다 바실리가 이 마을의 첫 트랙터를 들여와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낡은 소유의 상징인 밭두렁을 허무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은 지주에게 살해된 콜호스 농민지도자 바실리의 장례식이다.
아울러 상기한 “로우더 커플러 장치”는 핸들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작업기와 로더의 협소한 공간에 작업자가 들어가야 하므로 작업의 번거로움 및 불편함으로 인해 작업효율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작업자가 협소한 공간에서 불완전한 자세로 핸들을 조작할 경우 연령이 많은 작업자의 경우에는 허리와 같은 관절부위에 심한 신체적인 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단점을 갖게 되었다.
시스토는 자신의 뿌리를 떠나 메스티조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다. 의사는 이그나시오의 출혈이 심하여 급히 수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시스토는 피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헛수고다. 혈액을 가진 백인 의사들은 그들의 사교모임을 인디오 때문에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그나시오는 죽는다. 시스토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을 깨닫고 인디오로서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은 하늘로 치솟은 총구들을 긴 정지화면으로 잡고 있다.
  <떼오레마>에서 테렌스 스탬프는 부유한 이탈리아 가정에 머물며 가족들을 차례로 유혹하는 역을 맡는다. 그가 하인과 아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성 관계를 갖고 떠나자 이들은 모두 서서히 자기파괴의 길로 들어선다. 다양한 현상을 주재하는 추상적 법칙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 <떼오레마>는 바로 이 신비한 손님을 가리키며 다섯명의 가족들의 운명은 바로 그에 의해 결정된다. 이 영화에서 성애는 신과 인간의 충일한 관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그 관계는 테렌스 스탬프가 갑작스레 떠남으로 파괴된다. 랭보를 읽는 테렌스와의 천국의 나날들이 지옥의 한철로 바뀌는 수난은, 사실 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한 셈이다.
5. 대버켓 – 보통버켓 보다 폭이 넓은 버켓이지만 논란이 많은 작업장치중 하나이다.위에 언급한 5종의 작업장치는 03급이하 영업용 굴삭기에서 기본세트나 마찬가지로 되어버렸는데, 그 시발점이 대버켓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기사들이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나둘씩 구입하자 기본세트처럼 굳어져 버렸다. 왜 문제냐면 버켓용량을 초과하여 장비에 무리를 줄 뿐 아니라 예를들면 06급 굴삭기를 써야하는 상황에서도 03 굴삭기로 06급 굴삭기와 비슷한 버켓용량을 갖고있어서 06급 굴삭기를 찾지 않게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아직도 중장비기사들간에 논란거리며 06급 이상은 장착하지 않게 서로 약속하고있는 상황이다. 작업용으로 쓰지 않을 때는 여기에 브레이커, 리퍼 등을 수납하기도 한다.
  <메이트원>은 노조 결성 투쟁기에 사람들이 품고 있던 완벽한 공동체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잘 포착돼 있는 영화다. 그러나 감독 세일즈의 의도는 너무 눈에 보이게 드러난다. 낭만적인 분위기로 미화된 등장인물의 성격화나 멜로 드라마적인 과장이 때로는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제 역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변질된 20세기 미국 노동조합의 역사를 직설화법으로 담았다.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죽어갔어도 <메이트원>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바랬던 노동자들의 유토피아가 이룩되지 않는다.
연말 대목을 맞아 어느 레스토랑에서 밉살맞게 두 가지 코스메뉴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상상해 보자. 코스마다 샐러드, 수프, 메인요리, 디저트, 차가 나온다. A 코스는 버섯 샐러드, 단호박 수프, 안심 스테이크, 초콜릿 케이크, 커피로 구성된다. B 코스는 시저 샐러드, 브로콜리 수프, 등심 스테이크, 치즈 케이크, 홍차로 구성된다. 말할 필요조차 없이, 이미 정해진 구성 가운데 일부를 손님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저는 A 코스로 주시고요. 아, 샐러드는 시저 샐러드로 바꿔주세요!”라고 해맑게 주문했다간 진상 고객으로 낙인찍힌다.
  인디언의 화살이 날아오고 하나씩 죽어가는 뗏목 위에서 혼자 남은 아기레는 외친다.  “나는 신의 분노이다. 멕시코를 코르테스로부터 되찾고,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내 딸과 결혼해  함께 순수한 왕국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참고 견뎌나갈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있겠는가. 나는 신의 분노이다.”  신의 저주받은 정복자를 자처하는 아기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의 연기가 일품이다. 마치 세계 정복의 망령에 휩싸였던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모든 독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1956년 독일의 젊은 영화인들은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외친다. 그리고 곧 의회는 독일 영화 부흥을 위한 지원법안을 통과시킨다. 뮌헨을 중심으로 젊은 영화인들이 영화를 만들고, 70년대에 들어서 독일 영화는 새로워진다. 그 새로운 변모를 영국평론가들이 먼저 발견해 ‘새로운 독일 영화’, 즉 뉴 저먼 시네마라고 했다. 독일 국내에서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노이에 벨레’라고 했다. 이렇게 독일 영화는 부활했다. 1910년대 말에서 20년대 찬란했던 표현주의의 영광이 70년대에 와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대표주자의 한 사람이 베르너 헤르초크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독일 영화의 르네상스’라는 커버스토리로 새로운 독일 영화 특집을 마련하며 새로운 독일 영화에는 표현주의의 맥이 보인다고 했다. 헤르초크에게서는 <최후의 인간>의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영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르초크는 지나간 시대의 표현주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독일인의 핏속에 흘러내려오는 표현주의적 국민성이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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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시작은 자전거에 장치된 카메라가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회전문, 그리고 화려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로비 등을 자유롭게 다니며 도시화, 근대화가 대두하는 당시 사회상을 엿보게 한다. 칼 프룬드가 촬영한 이 도입부분은 도어맨이 처하게 된 피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을 예시하고 있다. 영화사에서 유명한 도어맨이 술에 취한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도어맨의 가슴에 매달려 세트를 비틀거리며 휘젓고 다니는데, 이는 도어맨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당시 중산층 계층의 불안정한 위치를 말해준다.
  카르네는 1840년대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 극장가 블르바르 뒤탕플을 무대로 인간극을 연출했다. 극장과 나이트 클럽이 줄지어 서 있던 환락가이자 범죄의 거리인 이곳에서 팬터마임 연기자 바티스트 뒤브로아주는 스테이지에서 나체춤을 추는 가랑스와의 애정을 축으로 장장 3시간35분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랑스를 둘러싼 뒤브로, 극작가 피에르 라스네르, 연극배우 프레데리크 르메트르 등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은 가상적인 것이었다.
  가벼운 부감촬영은 브레송의 거의 모든 쇼트에 순환적으로 나타난다. <무셰트>에서도 그렇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이러한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 속에 항상 존재하는 억압상태를 느끼게 한다. 그가 수업을 마친 후 교실에서 나와 항상 적대감을 느껴온 급우들에게 진흙덩이를 던지기 위해 낮은 웅덩이 비탈에 숨는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아르젠느가 그에게 죄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를 앙각으로 우러러 보게 된다. 그는 이 순간에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고백을 듣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힘(모성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앙각촬영에 이어 카메라의 위치가 다시 높아지면 그의 사회문화적 핸디캡(연약한 소녀)도 다시 나타난다.
그러자 오스터는 유년 시절의 경험을 술회하며 쿳시가 언급한 스포츠의 윤리적 관점을 비롯하여 그들 두 사람의 의견은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는 것을 피력한다. 타고난 기질에서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나 두 사람 간에는 과연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탓에 종종 독특한 유머가 발생하기도 한다. 가령 오스터가 배우 찰턴 헤스턴과의 우연한 만남을 상기하며, 그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무려 세 번이나 마주친 데에 흥분하자 쿳시는 지극히 담담한 반응을 보인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1.1%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24.0%로 2위였다. 그러나 대구‧경북에서는 달랐다. 홍 후보가 과반에 가까운 47.1%를 얻었다. 문 후보는 고작 21.8%였다. 심지어 사드 배치 반대 시위가 격렬했던 경북 성주군에서조차 사드에 찬성한 홍 후보가 무려 56.2%를 얻었다. “TK는 답이 없다. ” “세뇌되었다. ”는 탄식이 쏟아졌다. 왜 대구‧경북 주민들은 지난 9년간 지역 경제에 공헌한 건 별로 없는 보수정당 후보에게 또다시 표를 던졌을까?
앨범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 저마다 엇갈리는 현지의 평은 놓치지 말아야할 부분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존 레전드와 루츠의 기본 ‘클래스’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호평을 늘어놓은 매체도 적지 않다. 반면 한편에서 존 레전드가 ‘거장들의 소울’을 제대로 소화해낼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거나, 앨범 콘셉트와 메시지가 진부하고 과잉이라거나, 고민과 성의가 부족한 속빈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비판 역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Obama)는 당선 후에도 여전히 ‘그의 형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그의 당선에는 자발적으로 발 벗고 나서 흑인 사회를 결집시킨 거물급 흑인 공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투표가 아니면 죽음을!(Vote or Die)’이라는 구호를 외쳤고 오바마를 공개 지지하는 노래를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오바마를 당선시킴으로서 꿈을 이루었다.
  히치콕은 일찍이 말했다. “내가 신데렐라를 만든다면 마차 속에 시체를 넣겠다.… 나는 스토리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히치콕과 인터뷰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그의 죽음에 즈음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히치콕에게 형식은 내용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형식 자체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
이들의 건장한 신체는 오늘날 은밀해지고 심리적 문제로 치부되는 ‘육체’를 과거의 자유로운 집단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내레이터 조부모의 개인적 경험은 곧 집단의 경험이 되고, 동시에 중국역사의 알레고리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정치적이면서도 역사의 흔적이 배어있고, 전통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전통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장이머우의 연출능력과 의도 덕분이다.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붉은 수수밭>은 더욱 돋보인다. <필자: 김지석/부산예술학교교수·영화학>
[노트북] 저자 니콜라스 스파크스,영화 [아바타] 누른 원작 소설 이라고 해서 너무나 읽고 싶어졌다,영화로 디어 존을 보지 못했고 책으로 읽었지만 나는 사실 영화보다는 책으로 읽는 것이 더 좋았다이미 너무 이쁜 한쌍의 존과 사바나가 책표지에 있기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존과 사바나를 만들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존과 사바나가 눈에 보이는듯 읽을수가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존은 아버지와 잘 맞지가 않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분이며, 주화수집과 관련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이야기가 불가능한 분이시다,,그래… 더보기
  4세기에 걸친 수명을 누리게 되는 올란도는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다. 때는 16세기, 성을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복장을 한 미소년 올란도는 러시아인 사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돌연 러시아로 떠나버리자, 일주일 동안 죽음과 같은 잠에 빠져든다. 그후 시를 쓰려는 노력을 하지만 시인으로서는 3류임을 깨닫게 되자 터키의 대사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폭동이 일어나는 사이, 올란도는 또 깊은 수면에 빠지고 마침내 여성으로 전환된다.
  이런 부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콘돌의 피>는 제3세계 전투적 민중영화 운동에서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1971년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추방하게 되는데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콘돌의 피>다. 우카마우집단은 이후 본격적인 집단적·전투적 영화인 <민중의 용기>(1971), <제1의 적>(1974) 등을 발표했다. 비록 80년대 이후의 활동은 미약해졌지만 우카마우 집단의 믿음과 실천은 간단히 평가돼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존 디어 트랙터 부품 -디어 부품”

작업기를 부착하는 ‘씨티트랙터’는 전자 제어 방식의 엔진 운전으로 뛰어난 연료소비율에 저매연, 저소음, 저진동을 구현하는 ‘커먼레일 티어(Tier)4 엔진’을 탑재해 소음 및 진동에 민감한 도심 내 시설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또한 초보 트랙터 운전자가 손쉽게 트랙터 조작을 할 수 있게끔 전?후진 레버 조작 없이 페달만으로 전후진 이동이 가능한 2패달 방식의 HST(Hydro Static Transmission : 유압식무단변속장치)를 채택했다. 자동차와 같은 조향 방식에 최고 속도 30km/h로 기동성이 뛰어나 시설 내에서이동 수단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빠르고 간편하게 작업기를 탈부착할 수 있는 ‘퀵어태치먼트(Quick Attach)’ 기능을 트랙터 전방에 채택해 작업기 탈부착으로 인한 작업 준비시간을 최소화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산사에서 수도생활하는 세 사람의 스님에 대한 영화다. 노스님 혜곡은 스스로 자신이 입적을 앞두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젊은 스님 기봉은 사바세계에 두고 온 눈 먼 어머니가 주는 번민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도를 깨치기를 갈망한다. 동자승 해진은 고아로 태어나 산사에서 자라난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혜곡 스님이 이 세상을 떠나자 거기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안고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간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은 화두로 남는다.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답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다시 질문하는 독백과 방백의 화법이 이어지면서 영화 전체는 선문답의 삼천대천세계로 펼쳐진다.
 열광 뒤의 외면, 외면 끝의 반성. 임권택의 <서편제>에 대한 우리 동네의 풍경이었다. 여하튼, 좌우지간에, 이 영화가 90년대 한국영화의 그물에 걸려든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그물은 대체로 지겹도록 상투적이며 비린내가 풀풀 나는 것이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하며 정확한 측정이다. 그래서 그물코 사이의 숭숭 뚫린 구멍을 빠져나간 영화들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는 네오레알리슴 시기에 각본쓰기, 단편영화 만들기로 습작기간을 거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그 전통을 빠져나오면서 던진 말이다. 안토니오니는 그 사람의 내면을 <어느 사랑의 이야기>(50)에서는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외침>(52)에서는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황폐한 여정을 통해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정사>에서부터 그는 산업사회로 급격히 진입하고 있는 이탈리아 현대인의 내면을 그려낸다. 안토니오니에 의하면 그 현대인은 기술의 진보에 한걸음 처지는 도덕적 수단으로 세계를 산다. 그래서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 인간들, 사물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 갈등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성이나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모험을 생성해낼 정서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우카마우>는 영화로서가 아니라 제3세계의 민중영화 운동의 상징적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쿠데타로 등장한 군부정권에 의해 상영금지되고 호르헤 산히네스는 <우카마우>의 대중적 명성을 살려 그의 영화그룹을 ‘우카마우 집단’으로 이름지었던 것이다. 우카마우는 아이마라어로 ‘올바른 길’을 뜻한다.  <우카마우>에서 그것은 아내를 잃은 인디오가 메스티조 상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우카마우 집단’에 와서 그것은 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중투쟁의 길을 뜻하게 된다. 우카마우 집단은 그 ‘올바른 길’을 “민중영화는 민중 속에서 탄생하고 민중적 미학을 담으며 민중에게 보여져 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민중노선’으로 걷고자 했다. <콘돌의 피>는 ‘우카마우 집단’의 첫 영화다.
흔히 포크레인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업계에선 굴삭기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장비 업체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했다가 까인 사례가 있기도 하고, 건설 현장에서도 가끔 포크레인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식 문서 같은 곳에는 굴삭기라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포크레인’의 철자는 Poclain으로 프랑스계 회사의 이름이다. 발음도 프랑스어로 ‘포클랭’ 완전 정확하게는 뽀끌랭이라 읽어야 한다. 이 포클랭 회사는 지금 우리가 쓰는 유압 모터 방식의 굴삭기를 최초로 만들었던 회사였고 1974년에 ‘케이스(CASE)’라는 회사에 중장비 부분이 인수되었다.
  미국-할리우드만이 만들 수 있는 이 세 가지 장르 영화 중에서도 뮤지컬 영화는 그 화려함과 환상적 성격으로 할리우드적인 영화의 전형적 모습으로 꼽힌다.  할리우드에서도 뮤지컬 영화의 명문은 포효하는 사자의 로고로 유명한 미국 MGM사였다. 그리고  그 ‘꿈의 공장’의 좌우명은 사자 위에 라틴어로 쓰여 있다. ‘ARTS  GRATIA ARTIS’. 이 말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일이다. 이것은 무슨 심각하고 고상한 예술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현실의 복잡함과  고통 대신 영상의 환상세계를 관객에게 선사하겠다는 할리우드 영화 프로페셔널리즘의 ‘탈현실 선언’이다.
  이런 점에서 <욜>은 네오레알리슴의 새로운 작품 같기도 하다. 인물의 성격보다는 상황의 불가피함이 극을 이끌고, 그에 대한 비판보다는 묘사로 그치면서 열려진 결말로 이끄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까운 과거를 엿본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직접적인 묘사는커녕 매춘의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부끄럽게 한다. <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
토목현장의 경우 차륜의 험지주파력 한계 때문에 크롤러타입을 주로 사용하지만 도심지에서는 철제 크롤러에 의한 도로의 노면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육 이하의 휠타입을 사용한다. 괜히 전차들도 궤도에 고뭇조각 붙인 걸 달고 다니는게 아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속칭 ‘미니 장비’라 불리는 운전중량 0.5톤~4톤 정도의 초소형 장비나 소선회 장비들이 도심지 작업에 특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의외로 흔하게 볼수있게 되었다.[9][10]
  <황토지>는 그들의 슬로건이 치기가 아니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1984년 로카르노 영화제와 이듬해 홍콩영화제에서 <황토지>를 본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땅의 구도 앞에서 경악했다. 그것은 중국영화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지금 중국의 제5세대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했다. 열서너살에 문혁을 만나 난폭한 홍위병이 되었던 세대, 이윽고 믿었던 혁명에서 배반당한 채 도시에서 농촌으로 하방되었던 세대, 그러나 온몸으로 중국의 현실을 체험했던 세대, 그럼으로써 혹독한 현실체험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을 획득한 세대가 그들이다.
  아내와 헤어진 뒤 엘베 강에 차를 처박아 자살하려다가 실패한 로버트는 브루노의 밴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그의 영사기 수리 여행에 동참한다. 둘은 서로에게 기묘한 우정을 느끼면서 여자와는 화해로운 관계를 만들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은 고독하고 금욕적인  영웅이 등장하는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과 동일화하면서 여성없는 세계에 머물게 된 영화광의 고백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인사적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로버트는 여자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브루노를 설득한 뒤 그들이 함께 밤을 지낸 미군용 오두막 문 위에 “모든 것이 변해야만 해” 라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
화려한 파티와 은밀한 거래에서 시작해 음모와 살인, 갈등이 빚어진 다음 혼자 남은 마이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코폴라는 마이클이야말로 순수악이며 미국적 부패의 총체적 상징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1편에서는 관객이  마이클에 은근히 동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는 권력에 대한 관객의 환상과 욕망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충족시켜 준 탓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구조 자체가 신화나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7인의 사무라이>에선 존 포드적인 역동적인 카메라와 프랭크 캐프라적인 유머, 미조구치 겐지적인 리얼리즘과 오즈 야스히로적인 양식화된 구도가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각 집단이나 주요 인물마다 테마음악을 설정하여 사용한 사운드, 당시엔 별로 사용되지 않던 망원렌즈의 대담하고 효과적인 사용과 극대 클로즈업, 극적인 슬로 모션과 함축적이고 빠른 편집, 원형 모티브를 이용한 화면구성 등,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 인한 총체적인 미학의 완성도는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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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돌의 피>는 물론 칸타 현지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는 비록 출연자 모두가 비전문배우거나 농민들이며 거의 자연광과 들고 찍기에 의존하곤  있지만 민중적 삶의 양태를 탁월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강렬한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영화는 극적 맥락, 인물  구성, 음악, 리듬 등 모든 면에서 대립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마을 잔치와 아이들의 인형을 땅에 묻는 장면, 푸쿠나(피리)를 부는 인디오 농민과 로큰롤에 맞추어 춤추는 평화봉사단,  전투적 이그나시오와 백인 여배우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은 도시의 시스토, 피를 구하기 위해 트럭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 시스토와 고상한 의사들의 사교모임을 대조시키는 호르헤 산히네스의 관점은 매우 분명하다. 이야기 구성은 파울리나가 시스토에게 들려주는 회상 형식을 취한다. 그 때문에 잦은 플래시백의 사용이 불가피한데 그것은 농민들의  이해를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그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개인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농민들에게 왜 그들이 불임시술을 하는가를 밝혀주지 않는다.
  1992년, <블레이드 러너>는 감독판으로 다시 개봉되었다. 1982년판과의 차이는 데커드를 레플리컨트라고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 결과, 낯선 공간에  타자를 던져 놓고 그들이 악전고투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그려온 리들리 스콧의 영화계보에 따라서,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더 많아졌다. 타자  레플리컨트가 낯선 공간 지구에 찾아와서 패배하는 이야기로 영화를 읽는 것은 포스트 식민주의를 논의하는 1990년대에 더욱 적합한 해석처럼 보인다. <필자: 김경욱/영화평론가>
데니스 호퍼의 1969년작 <이지 라이더>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결정판이었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는 모터 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찾아서'(캡틴 아메리카의 가죽잠바와 헬멧과 모터 사이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여행을 떠난다. 돈은 마약밀매로 마련했고, 일용할 양식은 마약과 마리화나이다. 그들의 여정에 히피들과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이 스쳐지나간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새로운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꾸고, 조지(조지 워싱턴?)는 전쟁과 빈곤과 지도자와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 버린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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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편 만화영화는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디즈니 프로덕션의 화가들을 포함한)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애써 강조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화면  중심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우뚝 서고, 간혹 반사된 그림자로 처리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클래식 명곡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그 첫 삽입곡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이때의 화면은 디즈니 작품 스타일로서는 의외라고 여겨지는 실험적 영상들로 꾸며져 있다.
<붉은 수수밭>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손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20세기 초에서 일본의 침략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한 벽지마을에 살던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입부분에서부터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쉰살이 넘은 양조장집 주인 문둥이에게 팔려가는 주얼(공리)의 붉은 가마와 웃옷을 벗어제친 건장한 가마꾼들의 춤과 노래는 시청각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전달함과 동시에 가련한 여인의 운명, 건장한 남성에 대한 주얼의 은근한 눈길, 중국의 봉건적 폐습 등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중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것, 장이머우 영화의 성공의 핵심이다.
  마지막 이야기의 루시아는 혁명후 농촌의 노동자다. 질투심 많은 남편 토머스는 루시아를 밖에 나가거나 일하러 가지도 못하게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의 말을 따르지만 루시아의 불만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문맹퇴치를 위해 아바나에서 온 혁명군에게 루시아는 글을 배운다. 그가 쓴 첫 글은 남편에게 남긴 “난 떠나요. 난 노예가 아니어요”다. 그러나 루시아는 토머스에게 돌아온다. 일도 하고 당신도 사랑할 것이라면서. 이야기는 루시아와 토머스가 바닷가에서 엉켜 싸우는 것으로 끝난다.
매사추세츠 주 셰프들은 일 년 내내 이 지역의 다양한 제철 재료를 사용해 요리합니다. 독특한 분위기가 일품인 버나즈턴의 크링글 캔들(Kringle Candle)에 자리한 팜 테이블(The Farm Table) 레스토랑으로 향해 이곳에서 직접 운영하는 유기농 농장과 인근 다른 농부가 재배한 재료를 사용한 따뜻한 퀴노아(Quinoa, 남미에서 자라는 곡물)나 구운 뿌리채소 샐러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맛보세요.
  미국이라는 국가의 건국과정을 인종차별주의를 전혀 숨기지않은 채 과시했던 그리피스의 <국가의 창생>으로부터, 인종분쟁으로 분화된 옛 유고를 애탄하는 <언더그라운드>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 길을 걸어왔는가. 20세기 그 1백년간 영화는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해 왔고, 스크린은 컴퓨터의 윈도 체계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세상과 관객을 잇는 인터페이스로 기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창이며 거울이라는 것은 은유 이상이다.  <필자: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이 도전적인 영화는 제목이 같은 키플링의 시, 장 비고의 <품행 제로>라는 영화, 데이비드 셔윈과 존 홀리트의 ‘십자군들’이라는 대본에 힘입은 린제이 앤더슨의 특별한 영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힘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50년대 중반의 영국의 변화, 다시말해서 신좌파의 등장, 프리시네마의 탄생, 브레히트의 재발견, 존 오스본 등 연극계의 ‘성난 젊은이’들의 활약, 린제이 앤더슨을 주축으로 <사이트 앤 사운드>를 통해 펼쳐진 비평활동이 두드러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존 오스본), 놀랄 만하게 초현실주의적인 사건들(프리시네마), 권위를 전복하고자 하는 충동들(신좌파), 그리고 자기성찰의 장치 사용(브레히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영화란 감독 개인의 자기진술의 장이고 그것이 동시대 사회에 대한 주석으로 기능해야 하며 영화감독이  도전하고자 하는 기본 가치에 대한 견해가 반영돼야 한다는 앤더슨의 견해는 여기서 참여가 결여된 자유주의의 허약함에 대한 주석으로 바뀐다.
결국 베리만이 강조점을  찍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단절이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참을 수 없는 공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신을 부정하며 신을 침묵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블록이 체스말을 쓰러뜨리며 광대 요프  일가를 구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베리만의 예술가로서의 자기존재와 인간에 대해 마지막 믿음의 끈을 잡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제7의 봉인>은 중세적 주제가 아니라 현대의 삶의 공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
  <적과 백>은 <귀향>(1964), <검거>(1965)와 더불어 얀초 미클로슈의 초기영화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옛 소련의 혁명 50주년을 맞아 헝가리와 소련이 공동으로 제작한 이 영화에서 그러나 얀초는 혁명 축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진술을 하고 있다. 1만여명의 헝가리군 장교와 병사가 적군과 백군의 내전의 와중에 적군에 가담해서 소련과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우는 내용이지만 영화는 승리를 향한 영웅적인 투쟁기라기보다는 처형과 학살을 시각화한 발레 같다는 인상을 준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공평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그린다. 주인공은 하나가 아니며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다. 억압적인 나치·파시즘 아래서 모든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 강렬하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통해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골목길에서 벌어졌을 일들,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레지스탕스 정신 혹은 그에 반하는 타락의 모습을 훑어줄 뿐이다. 그 모습들은 하나하나가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영화는 여러 겹의 멜로드라마가 된다.